- 재사용 화환 표시제, 소비자와 화훼 생산자 보호할 수 있어
-국내 화훼 산업 발전 위해서도 필수적

한성권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장

사람들은 장례식장을 생각할 때 어두운 기운이 풍기는 복도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하얀 국화 화환과 폐부를 파고드는 백합 향을 떠올린다. 상주들은 고인(故人)에 대한 그리움으로 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의 마지막을 일가족과 지인들이 함께하는 장소에 진열돼 있는 화환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 왔을까?

우리나라의 화환 제작유통 현황을 보면 주로 3단이나 4단 화환이 유통되고 있고, 화환을 직접 제작하는 화원이 유통시키는 형태와 화환 전문 제작 업체나 기업이 유통시키는 것으로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유형은 소비자가 화환을 직접 제작하는 근처 화원에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3단 화환을 기준으로 10만 원 이상 판매가 되며, 대부분 자체 배송하고 사용 후 직접 수거해 가는 형태로 생화를 재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 번째 유형은 소비자가 근처 화원이나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전문 제작 업체나 기업에서 제작해 4만6만 원 정도에 판매가 되고, 위탁 배송 및 지역 연합회 등을 통해 일시 수거해 상한 꽃만 제거하고 생화를 보충해 재판매를 하는 형태이다. 이를 재사용 화환이라고 한다.

재사용 화환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화환을 제작할 때 플로랄폼에 절화를 꽂아서 상품을 만드는데 플로랄폼에 절화가 꽂혀 있는 구멍 외에 다른 구멍이 많이 나 있는 경우에는 재사용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또한, 처음 화환을 제작할 때는 초기 개화 상태의 꽃으로 제작해 꽃이 활짝 피지 않은 상태인데 화환을 재사용할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꽃이 만개돼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재사용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요즘 인터넷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 경조 화환은 4만 원도 되지 않은 저가 화환이 대부분이고, 생화의 원가와 한 화환에 사용된 꽃의 양을 고려해 본다면 재사용 과정을 거쳐 유통되는 것으로 보이며, 구매하는 사람에게 재사용을 한다는 동의 없이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화환의 연간 거래량은 약 700여만 개, 거래액으로는 약 7000억 원 정도 규모이며, 만들어진 화환 중 축하용 화환의 73.7%, 근조용 화환의 49.1%가 재사용 화환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화환업계는 재사용 화환의 유통 점유율이 전체 시장의 80% 이상을 잠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축하용 화환은 사용하는 시간이 30분 내외로 짧아 수거 후 화물트럭 등에서 리본만 갈아 다시 사용되기도 하는 등 재사용 비율이 훨씬 더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재사용 화환에 사용되는 생화는 시들기 전까지 평균 24회 정도 사용되고, 많게는 6회 이상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 재사용 업계에서는 개당 30005000 원 내외의 이득을 볼 뿐 크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상품가치가 훼손된 꽃을 구입하면서도 이 사실을 알 수 없어 정상 가격을 지급해 경제적 피해가 발생되고 있고, 경조나 근조를 위해 바쳐지는 꽃의 의미를 퇴색시켜 결국 국내 화훼산업을 퇴보시키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20198화훼산업 발전 및 화훼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을 공표해 지난 821일부터 생화를 재사용해 만든 화환을 판매하거나 제작 또는 보관·진열할 때는 반드시 재사용 화환임을 표시해 소비자, 유통업자 등에게 알려 주도록 하고 있다.

꽃은 먹는 것도 아닌데 재사용을 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오히려 한번만 사용하고 버린다면 꽃을 폐기시키는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것은 아닐까?

재사용 화환 표시제는 꽃의 재사용을 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제도가 아니라 최종 소비자에게 이 화환에는 생화가 재사용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취사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 주자는 취지에서 시행되는 제도이다.

현재의 우리 화훼 시장은 저렴한 가격의 수입 화훼류가 국내 시장 잠식을 가속화해 정상적인 화훼 소비문화 조성을 방해하고 있다. 거기에다 경조사용 화환의 생화 재사용은 화훼 농가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화환의 생화 재사용은 지금까지 업계의 관행처럼 굳어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경조나 근조화환을 보내 줄 정도의 사이라면 생의 전환점이 되는 날이나 마지막 날에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바쳐졌던 꽃을 아무데서나 주워서 거기에 정성만 담아서 주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물론 일부의 화환 구매자들은 재사용 화환 유통에 대해 모르거나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재사용 화환 표시제를 시행함으로써 소비자가 알고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자는 것이고, 이를 통해 생화의 사용을 좀 더 늘여 나갈 수 있다면 침체된 화훼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어 우리 화훼 생산 농가를 보호하고, 퇴색 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 화훼산업의 부흥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해 볼 문제는 한번 사용한 화환을 폐기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사용한 화환을 폐기하는 비용은 1개당 몇 백 원부터 몇 천 원까지 폐기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예식장, 장례식장은 사용된 화환의 폐기 시 비용 발생 문제로 재사용 화환 제작업체에 되파는 구조이고, 개당 50001만 원의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는 악순환이 발생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정부와 화환 업계에서는 기존 3단 형태를 탈피한 신화환(바구니, 스탠드, 오브제 화환 등)을 유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화환은 기존의 화환 형태와 다르게 포트나 100% 생화로 만든 여러 개의 꽃다발 등을 사용해 행사가 끝나면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나누어 가져갈 수 있어 폐기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환경적 측면에서도 기존 목재와 플로랄폼, 가림막 플라스틱, 고정용 철끈 등으로 무장한 3단 화환의 형태는 버리고, 꽃의 활용도가 크게 높아진 신화환 형태로 변화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서 화환은 가정용으로 사용되는 것 보다는 행사나 선물용이 소비의 주를 이루고 있다. 재사용 화환 표시제가 시행된 배경이기도 하다. 화훼 농가나 판매자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꽃 소비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소비자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과 미국·중국에 편중된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일도 시급해 보인다.

꽃 구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판매채널을 구축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온라인 및 편의점 판매 증대를 위한 시장 세분화와 함께 다양한 상품 개발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대전의 작은 한 화원에서는 전국 각지의 소규모 화원 업주들과 함께 힘을 모아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환경오염과 폐기 걱정을 크게 덜 수 있는 나눔형 신화환을 정착시키기 위해 몇 해 전부터 노력해 오고 있다. 그 노력에 더해져 전국의 화훼 생산농가, 화원, 중도매인 등이 모여 전국화훼상생연합회를 구성해 재사용 화환 표시제의 조기 정착, 화훼산업 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우리 화훼 산업을 견인하고 새로운 도약을 맞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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