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경 단국대 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화환, 누군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는 화환, 그리고 뜻깊은 행사장과 대박을 꿈꾸는 개업식에서 마주하던 화환은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또 다른 언어로 사용돼왔다. 
 

그러나 화환은 그저 낭비, 과시적 소비일 뿐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간혹 만나게 된다. 2지난해 화환의 의미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 화환은 공간장식(16.7%), 사치(8.1%), 낭비(3.3%)라고 생각하는 답변보다 축하와 위로(35.9%), 성의와 예의 등 마음표시(30.6%)의 감정적 전달이라고 생각하는 답변이 66.5%로 훨씬 높게 나타났다.

다행히도 화환은 긍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경조사에 이용되는 화환의 사전적 의미는 꽃 화(花), 둘릴 환(環)으로 꽃과 부소재를 이용해 둥근 원 형태로 만든 것이며, 영어로는 리스(wreath), 독일어로는 크란츠(krantz)라고 한다. 현재 이용되고 있는 화환은 19세기 말 선교사들이 도입한 리스를 기원으로 한 변형된 형태로 3단을 쌓아올려서 크기를 키우고 축하와 애도의 글이 더해진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형태이다. 
 

화환에 사용되는 꽃은 아름다움에서 출발했지만 사랑과 다복, 번영과 풍요, 충성과 존경, 영생과 환생 등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꽃이 개화해 번성하고 시들어 떨어지는 생리 구조가 생로병사의 인간의 삶과 유사하다. 꽃이 최고의 선물로 사용되는 이유는 어떠한 말보다 살아있는 생명체 그 자체만으로 축하와 애도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축하와 애도의 의미를 지닌 화환이 생화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조화와 종이 판넬로만 제작된 화환으로 둔갑되거나, 한번 쓴 꽃을 다시 사용해 만든 재사용 화환이 유통돼 화환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또한 재사용 화환 제작업체, 수거업체의 등장은 일부 예식장, 장례식장과의 암묵적 거래로 재사용 화환을 더욱 양산시키고 유통 질서마저 흔들어버렸다. 정부는 지난해 8월 ‘화훼산업 발전 및 화훼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재사용화환 표시제를 도입했고 최근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화환은 수 십 년간 몸살을 앓고 있다. 1969년 1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1973년 개정된 가정의례준칙에 화환진열 규제가 실시되면서 화환이 허례허식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2016년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5만 원 이하의 저가 화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8월 화훼산업법 시행규칙 제정으로 재사용화환 표시제가 시행됐으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화환 재사용이 불가능해지자 수거업체가 활동을 중단했고 예식장과 장례식장은 화환 사용 후 처리가 어려워지자 아예 화환을 받지 않으려 한다.

식장에 들어온 꽃은 재사용된 꽃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 위해 형광물질까지 뒤집어쓴다. 이대로라면 재사용 화환 표시제가 오히려 화훼소비를 더 위축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화환은 죄가 없다. 화환은 꽃이라는 고귀한 생명체에 우리의 진정한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또 다른 언어이다. 화환은 시대와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형태와 범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축하와 애도의 본질적인 의미와 상징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마음을 담은 화환이 재사용된 꽃으로 얼룩지거나, 단속을 피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정성이 담긴 화환이 폐기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식장 앞에서 문전박대 당하는 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꽃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꽃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문화가 하루 빨리 조성되기를 기원한다.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