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

해마다 반복되는 가축질병
방역 위해 최선 다하는 축산 농가

노력 평가절하돼서는 안돼
관계자 모두 협력해 방법 모색해야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이종인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
이종인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

꽤 오래전의 일이다. 중요한 시험에서 두 번을 연속으로 떨어진 나는 나를 아낀다는 어느 분과 마주 앉았다. 그분은 목적한 것은 반드시 이루며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얼마나 공부를 안 했으면 시험에 떨어질 수 있는지? 그것도 두 번이나 연속으로. 위로를 받을 줄 알았던 나는 야단만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 두 번의 시험을 위해 내 딴에는 죽기 살기로 공부를 했다. 결국 나는 떨어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던 것이다.

강원도 화천의 어느 양돈 농가는 방역의 정석이라고까지 불렸다고 한다. 돈사의 지붕에까지 올라가 소독을 했다고도 한다. 그랬던 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병했다. 어느 언론에서는 그때까지 버틴 것이 오히려 더 대단하다는 안타까운 보도를 낼 정도였다. 하지만 여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했던 프로젝트는 거의 축산에 관련된 것이다. 그동안 많은 축산 농가를 방문했다. 조사를 하러 간 어느 산란계 농가에서는 조사 대신 농장주의 넋두리와 농장주 아내의 눈물을 대해야 했다. 이 농가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농장주는 우리 농장의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한다. 조사하러 갔던 어느 오리 농가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병했었다. 해당 농장의 농장주는 방역과 소독 등 모든 것을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어떻게 우리 농장에서 AI가 발병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휴전선을 경계로 하는 강원도 지역에서 죽은 멧돼지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되자 도와 시·군에서는 이 지역의 멧돼지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고, 서둘러 경계가 될 만한 지역에 철조망 울타리까지 설치했다. 그 후 야생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가 발견되는 지역이 넓어지고, 일부 농가에서는 ASF가 직접 발병했다. 양돈 농가들은 멧돼지가 백두대간을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고, ASF에 감염된 멧돼지가 백두대간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설악권을 철저하게 막아주기를 바랐다. 그러는 사이 휴전선 지역보다 훨씬 남쪽인 강원도 영월군의 야생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AI가 발병했던 오리 농가의 농장주는 이야기한다. 본인은 AI를 막기 위해, 농장의 오리를 지키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하지만 AI가 발병되는 순간 그동안 내가 해왔던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오직 주위의 따가운 시선만이 있을 뿐이었다. 질병을 맞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지. 그동안 애정을 갖고 키우던 가축을 묻어 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지. AI가 발병한 후 농장을 방문한 관계 기관의 담당자들에게도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가축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축산 농가는 물론이고 방역과 관련된 공무원, 관계 기관, 업체 등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한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 해마다 반복되는 가축질병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을까? 그것이 어려우면 관계자 모두가 협력해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방역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축산 농가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게 할 수는 없을지. 그러나 ASF는 당분간 계속 남하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축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방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축산 농가의 노력이 필요 이상으로 평가절하돼서는 안 된다. 이참에 축산물은 수입하는 것이 오히려 좋겠다는 주장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축산 농가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하게 하자. 방역에 대한 그들의 노력에 대해 이제는 당신들만의 책임이 아니라고 얘기하자. 하지만, 그래도 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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