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성적서 위조사례 1700건…‘후폭풍’ 거셀 것

국내 드론시장 점유율 1위 DJI사도 포함
드론활용 농작업 마비 ‘불보듯’

적법한 제품으로 교환·보상판매 등
소비자 구제방안 마련 시급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두고 드론으로 편리하게 농사를 지으려던 농업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적발된 방송통신기자재 시험성적서 위조 사례의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농업용 드론시장에서 가장 높은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DJI사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농촌에 때 아닌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드론을 활용해 편리한 농사를 꿈꾸던 농업인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 들여다보고, 그 영향과 향후 전망을 살펴봤다.

# DJI 등 381개 업체 허위 시험성적서 1700건 적발

지난해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내·외 381개 제조·수입업체가 위조된 시험성적서를 통해 부정하게 방송통신기자재 적합성평가(이하 적합성평가)를 받은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과기정통부 소속 국립전파연구원(이하 전파연)이 미국 국립표준연구소 등의 협조를 통해 2006년부터 최근까지 국내 적합성평가를 받기 위해 미국 소재 BACL이 발급한 시험성적서 전체 내역을 대상으로 진위 여부를 전수 조사한 결과 381개 업체의 적합성평가에 이용된 총 1700건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는 세계 드론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며, 국내 드론시장 점유율 1위로 잘 알려진 DJI사가 포함됐다. 이에 국내에서 DJI를 통해 제조·수입되거나 판매된 모든 제품이 위조된 시험성적서를 가지고 유통됐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시험성적서 위조 등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적합성평가를 받은 경우 전파법에 따라 적합성평가 취소와 기자재 수거 등의 행정처분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또한 적합성평가가 취소되면 향후 1년 간 적합성평가를 다시 받을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적합성평가를 다시 받기 전까지 해당 기자재의 제조·수입·판매 등이 금지된다.

이에 농업 현장에서는 DJI의 처분 결과에 따라 농가나 일선 농협에서 농작업을 위해 구입한 드론을 사용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을 이유로 DJI가 국내 사업을 정리하고 철수하게 될 최악의 상황까지도 상정,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 시험권한 없는 중국 시험소에서 발급

KC인증 마크
KC인증 마크

적합성평가는 전파법에 따라 방송통신기자재 등의 제조·판매·수입업자가 기자재를 시장에 유통하기 전 기술기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확인하고 인증을 받거나 등록하는 제도로, KC인증으로 불린다. 또한 이를 위한 시험성적서 발급은 전문 인력·설비를 갖추는 등 고도의 기술심사 능력이 필요해 법령에 따라 엄격히 관리되는 업무다. 따라서 국내 시험기관 지정 절차 또는 국가 간 상호인증협정에 따라 지정된 시험기관에 한해 시험성적서를 발급할 적법한 권한이 부여된다.

미국 BACL 시험소는 미국과 2005년 6월 체결된 상호인증협정에 따라 미국 국립표준연구소(NIST) 지정 절차를 거쳐 시험권한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이번에 적발된 381개 업체의 경우 시험권한이 없는 중국 소재 BACL 시험소를 통해 시험성적서를 발급받은 것이다. 당연히 시험성적서의 효력은 없으며, 전파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에 전파연은 행정처분을 목적으로 지난해 말부터 해당업체들에 대한 청문을 순차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청문 내용은 비공개여서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DJI의 경우 지난해 말 청문을 마쳤고, 다른 업체 청문이 끝나는 4월이나 5월 경 전체적인 행정처분이 있을 것”이라며 “현재는 인증에 대한 취소 처분이 당연하다는 입장으로 향후 판매된 제품에 대한 수거나 파기의 범위와 대상 등에 대해서도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 불안한 농업 현장, DJI 철수설까지

이에 농번기를 앞둔 농업 현장과 드론 등을 유통하는 농기자재 업계에서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DJI가 생산하는 드론만 해도 국내 농업용 드론시장에서 최소 70%를 차지하는데, 드론의 중앙처리장치(CPU)라고 할 수 있는 비행제어시스템(FC)까지 감안하면 국내에서 유통·판매된 농업용 드론의 태반이 DJI의 행정처분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는 까닭이다.

국내 한 농자재업체 관계자는 “KC인증이 불법이 되면 한국에서 더 이상 제품을 사용 못하고, 회수해야 한다”며 “기존에 구매한 제품이라 할지라도 드론을 띄웠을 경우 누군가 신고하면 불법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불안감을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DJI가 국내 사업을 정리하고, 철수할 것이란 얘기까지 돌고 있다.

드론 관련 업체 한 관계자는 “‘DJI가 한국 사업을 접는다’는 얘기가 지난해부터 돌고 있다”며 “일부 대리점에서는 DJI의 주력 드론임에도 불구하고 ‘제품 구매는 물론 반품까지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 DJI 코리아 관계자는 “드론 유통은 소비자용 2곳, 농업용 3곳 등 직판이 적고 대부분 딜러가 소규모 딜러와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 반품 관련 내용은 정확히 파악이 안 되고 있지만 현재 한국에서의 사업은 정상적으로 영업활동이나 A/S가 진행 중”이라며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시장 중 하나로 DJI는 한국 시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 소비자 피해 최소화를 위한 구제방안 마련돼야

행정처분 이후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진다. 해당 제품을 구매한 농업인이나 일선 조합, 지자체 등 소비자에 대한 구제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만일 DJI에서 그동안 판매한 모든 제품에 대해 회수나 파기 명령이 내려질 경우 드론을 활용한 농작업은 일대 마비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현 단계에서 소비자 구제방안은 청문회 시 해당 업체가 제시하도록 돼 있다. 이를 토대로 관련 부처와 협의를 진행, 확정된다. 다만 이번 행정처분과 소비자 구제는 전파법 상의 의무 위반과 이에 따른 처분일 뿐이어서 공정거래법 등 타 법에 대한 적용 여부는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인 등 소비자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는 구제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 구제방안과 관련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KC인증제도 자체가 소비자를 규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제조·수입·판매하는 자를 대상으로 한 제도”라며 “인증이 허위라 하더라도 실제 하자가 있는 제품이 불법으로 인증을 받은 경우와 하자 없이 인증만 불법으로 받은 경우 등을 제품별로 따져서 기저기준에 대한 적합 여부에 따라 구제방안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현장의 일대 혼란 등 심각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회수나 파기 명령의 대상을 보다 구체화하는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징벌적 과징금 등 DJI에 강도 높은 처분이나 소비자 보상판매 또는 교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용환 서울대 농생명과학대학 교수는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가 강구돼야 한다”며 “원인을 제공한 회사는 법적, 사회적 책임을 지는 자세로 임해야 하고, 정부도 조기에 대응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만큼 적극적인 구제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농산업계 관계자는 “불법제품으로 처분 받은 제품의 판매나 서비스를 중단하고, 신제품 사업만을 진행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될 것”이라며 “불법으로 생산·수입·유통된 제품을 적법한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등 보상판매가 가능하도록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줘야 충분한 소비자 구제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관련 DJI 코리아 관계자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으로,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답변이 쉽지 않다”면서 “외부 대행 연구소에서의 행정적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 현재는 적법한 연구소를 통해 신제품 인증 등을 진행, 향후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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