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박유신 기자]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의 시대가 도래 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가 일상화된 현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전 세계가 앞 다퉈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10월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을 선언한 데 이어 12월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 했다.
 

농업분야도 이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농업은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동시에 가장 피해가 심한 산업이기도 하지만 탄수흡수원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양, 과수, 산림은 대표적인 탄소저장고이며, 농촌이라는 공간이 가진 자원은 재생에너지 생산에 유용하다.
 

하지만 그동안 ‘탄소중립’이라는 화두에서 농업·농촌이 가진 가치의 인식은 극히 미미했다. 기후변화 속에서 생산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적응 위주의 대책이 추진되다 보니 어느새 탄소흡수원으로서의 인식은 사라졌다. 농업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9년 기준 국가 총배출량의 2.9%(2040만톤CO2eq)에 불과하다 보니 어느 사이 주목받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벼재배, 농경지 토양, 장내발효, 가축분뇨에서 배출되는 양일뿐 시설난방·동력기기 연료 등 직접사용에너지와 비료·농약 등 간접사용에너지 발생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이 제외된 수치라 정확히 농업을 영위함에 있어 배출되는 양과는 차이가 있다. 
 

정부의 대책 역시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을 통한 감축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 정작 대기에 남아 있는 온실가스 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은 없는 것 같다. 
 

2018년 농촌진흥청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전국 농경지가 한 해 동안 지리산국립공원 171개의 CO2 흡수 효과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공익적 가치로 추산하면 281조 원에 달하고 이중 탄소 저장가치는 6조5000억 원에 달했다. 특히 논·밭에는 대기 중 CO2 7000만 톤에 해당하는 9000만 톤의 토양탄소가 저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토양 즉 흙의 보전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 최우정 전남대 교수가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특위와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마련한 ‘탄소중립을 위한 농업분야 주요과제’ 토론회에서 “지금 당장 탄소중립을 실현하더라도 온실가스 농도는 수십·수백년 간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결국 탄소중립을 실현하다해도 이후에는 배출돼 남아있는 온실가스를 어떻게 흡수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고 농업·농촌분야의 기능과 역할이 새롭게 주목을 받을 것이다.
 

다만 탄소중립 실현과정에 있어 예상되는 농업인들의 직·간접적인 피해와 탄소중립을 유인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여기에 농업·농촌의 존재가치에 대한 국가적·국민적 공감대가 지금보다 더 형성돼야 한다. 지금도 농업계가 탄소중립의 필요성과 농업·농촌의 역할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선뜻 환영을 표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축’과 함께 ‘흡수’라는 사고 전환을 통해 탄소중립 실현에 있어 농업·농촌의 가치가 더욱 빛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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