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수 농산물도매시장 평가위원(전 농협유통 양재점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도매권역 시설현대화사업을 앞두고 시장도매인제 도입논의가 한창이다. 공공성과 안전성은 경매제가, 효율성과 경제성에선 시장도매인제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에 비유하자면 전국의 수험생과 경쟁해야하는데 같은 반 옆 짝하고 우열을 따지는 것과 비슷하다.

농산물의 전국도매시장 취급물량은 2010년대부터 매년 감소추세이고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거래가 더욱 늘어나 도매시장 이탈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매시장이란 울타리 안에서 거래제도의 유불리만 따지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우선 도매시장에서 일어나는 거래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할 부분이 있다. 경매나 정가·수의매매, 시장도매인제 모두 쌍방의 의견이 가격에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보통 경매가격은 중도매인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낙찰가격이 출하자 예상가격에 미달할 경우 가격보전이나 다음경매에 시세를 더 내 출하자의 이탈을 방지하고 있다.

약 10년 전에 경매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정가·수의매매는 수치상으론 도매시장 거래물량의 20%대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중 과반정도는 불낙물량처리, 타 도매시장 전송거래, 중도매인의 점포 재배정 평가를 잘 받기 위한 허위실적 등이 포함돼 있다.

가격과 물량을 사전협의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정가·수의매매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 이유는 대형마트와 대형식자재업체는 이미 산지직거래형태로 도매시장을 떠나갔고, 중소형 업체 중 일정규모 이상의 물량을 구매할 구입처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시장도매인제는 정가·수의매매와 성격이 비슷한 제도로 동일시장 내에서 경매제와 함께 운영한다면 경매물량이 시장도매인거래로 이동하겠지만 온라인 등 다른 유통경로로 빠져나가는 이탈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최근 정부가 대안으로 추진하는 온라인 경매는 도매시장법인 입장에선 수수료가 7%에서 3%로 줄어 별관심이 없고, 농협공판장만 마지못해 하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경매제보다 발전한 정가·수의매매, 시장도매인제, 온라인경매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산지의 미진한 규모화와 더불어 거래대상인 구입자가 영세해 도매시장 같은 물류거점을 꼭 거쳐야 되기 때문이다.

도매시장을 평가하면서 필자가 느낀 해법은 도매시장 거래제약 완화이다. 1980년대 유통환경에서 제정된 '농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이 여전이 도매시장의 거래 제도를 꽁꽁 묶어두고 있다. 도매법인의 제3자 판매와 중도매인의 산지구매 구매를 허용해 시장 밖의 경쟁자들과 활발하게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수도권 도매시장은 규모화 된 산지출하조직 위주로 운영돼야한다. 그동안 공공성에 너무 치우치다보니 도매시장 기능이 퇴행되는 부문이 없지 않았다. 전업농은 도매시장, 소규모농가는 푸드플랜, 파머스마켓 중심으로 출하하는 투트랙 정책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를 통합해 도매시장을 통합 법인이 관리하도록 하자. 두기관의 중복된 기능을 조절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지자체 담당공무원이 수시로 바뀌어 전문성이 떨어지는 지방 도매시장 관리를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공영도매시장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일부지방 도매시장의 용도전환이다. 과채류 주산지임에도 채소품목 대부분을 가락시장에서 반입하는 춘천도매시장 같은 경우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로 활용하면 출하농업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익적 기능과 역할논의에 중심에 있는 가락동도매시장을 새롭게 디자인 하자. 늦은 감이 있지만 도매권역 시설현대화를 앞두고 미래지향적 운영방식을 위한 활발한 논의는 바람직하다. 온라인판매의 강점이 있는 쿠팡과 농산물 조달에 강점이 있는 농협이 기존 5개 법인을 인수해 새로운 형태의 도소매 온라인 판매 법인을 만들고 일정이상 수익금을 출하자에게 환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자.

중도매인은 소법인으로 규모화해 시장도매인으로 전환하자. 2016년 하남스타필드를 개장하면서 ‘우리의 경쟁상대는 용인자연농원이다’라고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말했듯이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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