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에서 곤충농부로 …'궁금-궁금한 굼벵이' 브랜드로 소비층 확보

기계공학석사, 원자력발전소 연구원과 굼벵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 사이에 유태호 눈꽃굼벵이 대표가 있다.
 

공학도였던 그는 컴퓨터 앞에서 자연을 꿈꿨다. 안정적인 연구원의 삶 보다는 단독주택의 텃밭에서 행복을 느꼈다.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32살, 미래를 촉망받던 원자력발전소 연구원은 남들이 기대하는 미래보다 자신이 기대하는 미래를 위해 남은 삶을 굼벵이에게 걸었다.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신이 준 양식’, 굼벵이에게서 미래를 찾은 유 대표를 만나러 대전으로 가보자.

 

#연구원 생활 접고 하우스도 직접 지어
 

“어려서부터 내가 키워서 쑥쑥 자라는 식물들을 보면 신비롭고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산을 오르거나, 푸르름이 뒤덮인 논과 밭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습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면서도 자연을 더욱 그리워했던 것 같습니다.”
 

유 대표는 결혼 후 신혼집도 젊은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는 텃밭 딸린 단독주택에 마련했다. 
 

“텃밭 속에서 꿈틀거리는 굼벵이가 보이고 살구나무 위로 매미가 올라올 때면 아이들과 함께 신비함에 감탄했습니다. 아이들도 징그러워하기 보다는 자연의 생동감에 웃는 것을 보면서 즐거웠습니다. 사무실보다는 땅에서 기쁨을 느끼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안정적인 연구원 생활보다는 땅이 주는 즐거움에 도전해 보고 싶었던 유 대표는 결국 만 32살에 연구원 생활을 접고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텃밭에 보이는 굼벵이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다 굼벵이 종류가 다양하고 동의보감에도 그 효과가 나올 정도로 사람들의 몸에 이롭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굼벵이를 키워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 대표가 굼벵이 사육을 결심했던 2015년 당시에는 곤충이 큰 관심을 받지 않고 있었다. 기계공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래형 원자력발전소 연구를 하면서 실험장비를 개발·운용하고 코드 개발까지 해 본 유 대표에게는 재미있는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고지도 없고 지인도 없는 청년창업농에게는 모든 것이 장애물이었다. 당장 굼벵이를 키울 땅을 구하고 사육장을 짓는 것부터 굼벵이 사육 방법도 전혀 몰랐다. 그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퇴직금으로 굼벵이 사육을 시작하려고 하니 한 푼 한 푼이 소중했습니다. 단열이 중요한 굼벵이 사육시설을 짓기 위해서 돈을 덜 들이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3개월 동안 하우스 짓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기술을 배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눈꽃굼벵이 농장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판로개척, 도전정신으로 굼벵이 제품 만들어
 

농장을 짓고 사육을 시작했지만 막상 굼벵이를 파는 일이 쉽지 않았다. 유 대표는 늘 그랬던 것처럼, 직접 부딪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굼벵이를 팔기 위해 식품법, 제조법, 브랜딩, 디자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 마케팅 등을 배우고 공부했다. 
 

대전광역시농업기술센터에서 주최하는 강소농 경영개선 실천과정 교육에 참가해 브랜드개발, 아이디어 개발 등 경영개선에 필요한 사항에 대한 컨설팅과 교육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유 대표는 굼벵이라는 단어에서 ‘궁금’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 제품의 스토리와 마케팅의 방향성을 만들어 냈다.
 

‘궁굼 - 궁금한 굼벵이’라는 독특한 브랜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곤충의 혐오감보다는 도전정신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겠다는 유 대표의 마음이 반영됐다. 굼벵이와 발음이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분야인 굼벵이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긍정적 이미지로 만들어낸 것이다. ‘활력궁굼’, ‘밤이궁굼’, ‘미인궁굼’, 궁굼한차’ 등 식용곤충에 대해 혐오감이 있는 소비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네이밍을 했다. 굼벵이가 함유된 뻥튀기는 ‘궁굼한뻥’으로 작명한 센스가 돋보인다.
 

“굼벵이가 들어갔는지 모르게 먹을 수 있는 농축액 제품 그리고 효율을 중요시 여기는 굼벵이 100% 제품까지 모든 소비층을 아우를 수 있도록 제품개발을 했습니다.”
 

눈꽃굼벵이는 2019년 경영개선실천 우수강소농 경진대회 등 각종 경진대회에 참여해 수상하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9년 연 매출 8000만 원에서 지난해 연 매출 2억 원을 달성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 박사, 굼벵이 생산자동화 목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의 이력을 굼벵이 키우는데 활용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농협재단의 지원으로 네덜란드에 선진농업 탐방을 가게 됐다. 농업의 자동화를 보고 큰 영감을 얻은 그는 기계공학을 굼벵이 사육에 접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지난해부터 충남대 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굼벵이 생산과 관련해 저렴하고 효율적인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저렴하면서 손쉽게 대량사육을 할 수 있는 굼벵이 사육시스템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는 딥러닝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진과 동영상 속 굼벵이를 측정해 판별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을 통해 굼벵이의 령별 개수를 파악하고 대략적인 무게까지 계산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앱과 연동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바로 정보를 습득, 농가에 보급하겠다는 목표다. 
 

“혼자서는 굼벵이 산업을 확장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한국곤충산업중앙회의 재무이사로 활동하며 전국에 있는 굼벵이 사육 농가들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그는 굼벵이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신이 주신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굼벵이를 먹으면서 늘 피곤해 하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저와 아이들의 건강에 큰 도움이됐습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개선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배워야 할 것들이 더욱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흐름도 바라봐야 하고 더욱 민감해지는 자연의 흐름도 따져야 하는 것이 농사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청년농업인이라면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하며 내 터전인 농업에 접목시켜 발전시키는 것이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는 굼벵이의 이로움을 알리고 생산 농가에게는 굼벵이 생산 효율을 높여주고 가공업체에는 일률적이고 합리적인 굼벵이 원물을 납품해줄 수 있는 공급원이 되겠다는 그의 야무진 계획이 모두 이뤄지기를 바라본다. 


[특별인터뷰]박상윤 대전농업기술센터 지도사

“유태호 대표는 강소농 육성의 대표적 우수사례이면서 대전 청년농업인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선도농가라고 생각합니다. 유 대표의 성장을 보면 앞으로 대전 강소농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실제로 대전농업기술센터에서는 유 대표와 함께 식용곤충 소득화 모델구축 시범사업에 착수, 가공제품 생산과 포장시설에 2000만 원을 보조했다. 
 

박상윤 대전농업기술센터 지도사는 대전이 타 시군에 비해 농지가 적지만 다양한 농작물을 경작해 작목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대전 농업이 타 시군의 농업 경쟁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품과 농장의 스토리텔링 만들기, 고급화된 브랜드 이미지 만들기,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근교농업 체험농장 등과 같이 가격 경쟁력 높일 수 있는 전략적 마케팅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대전광역시농업기술센터에서는 내년부터 청년농들을 위한 컨설팅 지원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청년농업인 5농가를 선발해 민간전문컨설턴트와 1:1 매칭 후 경영개선, 브랜드개발, 아이디어 창출 등 청년농업인이 원하는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대전지역에 제2의 유태호, 제3의 유태호가 계속 발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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