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석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흔히 소비자를 왕에 비유한다. 소비자는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원하는 물건을 공급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라는 단어에는 권리를 넘어선 특유의 따뜻함이 함축돼 있다. 역사를 들춰보아도 왕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대신 백성을 안전하고 평안하게 보살펴야 할 의무를 짊어지고 있었다. 이것이 물건을 공급하는 생산자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까닭이다.

물론 생산자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비자가 찾지 않는 물건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농업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소비자에게 안전하고 맛있는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덕분에 수렵시대를 넘어 농경시대가 되며 보다 풍족한 먹거리를 누릴 수 있었다. 또한 더 맛있고, 더 건강에 좋은 먹거리 생산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농부의 노고로 지금의 생산기술 발전을 이루게 됐다.

배를 생산하는 농업인들을 보자. 그들은 봄에는 꿀벌 대신에 꽃가루를 날라 나무가 열매를 맺도록 한다. 꽃을 시샘하는 추위로 배꽃이 얼거나 열매가 떨어지는 일로 불안에 떨 때도 있다. 뜨거운 여름에는 해충과 씨름하고 말라가는 땅에 물을 대주며 햇살을 받은 과일들이 더 맛있게 잘 영글도록 그늘진 가지를 잘라내 준다. 가끔은 혹독한 태풍이 배나무를 할퀴고 과실을 떨구게 하지만 바람 앞에 결코 작아지지 않고 당당히 맞서 풍성한 가을을 일구고야 만다. 이렇게 농업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이 만든 맛있는 배를 원하는 소비자가 있고 그들과 함께 행복한 먹거리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자연이 주는 시련을 거뜬히 견디어 낸다. 작은 거인의 고군분투는 힘들고 지난하지만 소비자와 나눌 행복으로 매일 같이 과수원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다.

농업인은 한 나무 또는 하나의 과수원에서 생산되는 모든 배가 다 달고 맛있도록 세상에 알려진 모든 기술을 이용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실이 달린 가지는 저마다 굵기가 다르고, 가지의 위치에 따라 햇빛을 받는 정도에 차이가 생기게 돼 같은 나무에서 생산한 과실도 맛과 크기는 천차만별인 상황이 발생한다. 기계로 생산되는 공산품은 생산물이 거의 같은 품질을 보여주지만 배를 포함한 농산물은 각자가 매달린 위치, 즉 생산 공장이 다르기 때문에 공산품과 같은 품질의 균일도를 이룰 수 없다.

그럼에도 농부들은 최대한 동일한 품질을 가진 과실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실망한 소비자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제는 품질이 균일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농부들의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소비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이해를 구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생산자는 모두 자신들의 가족이 먹을 배를 생산한다는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 안전하고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소비자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때이다. 소비자가 생산자를 염려하고 배려하지 않는다면 결국 생산자의 설 자리는 없어지고 말 것이다. 아무도 생산을 하지 않으면 소비자도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없게 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서로를 위하고 격려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코로나19로 모두 힘든 시절이지만 작은 정성과 배려가 모여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농업인과 소비자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서로를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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