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철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 어려움 겪거나 소외되는 일 없도록

-농업인에 대한 배려와 지원, 체계적인 교육 선행돼야

오랜만에 마트를 찾았다. 이것저것 보다 보니 카트에 제법 많은 상품이 담겼다. 긴 대기 줄을 서고 계산대에 이르러서야 아차, 장바구니를 챙기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구입해 물건을 담으며 언제부터 일회용 비닐봉지가 사라졌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것이 당연했다. 무심히 받아와 무심코 버렸던 일회용 비닐봉지는 2019년 1월부터 대형마트·슈퍼마켓에서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2015년 기준 한해에 약 216억 개에 달하는 엄청난 배출량과 적게는 수십 년, 많게는 수백 년간 분해되지 않고 땅속에 잔존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쓰레기종량제는 이보다 훨씬 전인 1995년 1월부터 시행됐다. 쓰레기 배출에 대한 가격 개념을 도입해 쓰레기양을 줄이고 재활용품을 최대한 분리 배출함으로써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시행 이후 일 평균 생활폐기물 매립량이 1994년 4만7000톤에서 2019년 7500톤으로 줄었으며 재활용률은 62%에 달하는 효과를 거뒀다.
 

환경을 위한 움직임은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우리나라는 환경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1980년대에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이 결성되면서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자연과 물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환경운동은 정책입안 등 적지 않은 효과를 거뒀지만 그보다 더 급속도로 진행되는 환경파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제사회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에 합의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050 탄소중립 선언’을 했으며 ‘범정부 국가 비전‧추진전략 발표’ 등 탄소중립 방안 대책을 국가적 의제로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7억2760만 톤으로 이 가운데 2.9%인 2120만 톤이 농업 분야에서 발생한다. 경종(耕種) 분야만은 1.6%인 1180만 톤이며 이 중 6만3000 톤이 벼 재배 시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온실가스 배출은 식량 생산 과정 중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산물이지만 환경을 위해서는 가능한 배출을 최소화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촌진흥청은 농업의 탄소저감을 위해 우선적으로 벼 분야의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중간 물 떼기와 논물 얕게 걸러대기 등의 ‘논물 관리’, 모내기 전 경운·로터리·써레질을 생략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최소 경운 모내기 농법’ 등 관련 시범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내년부터 5년간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물과 비료를 적게 소모하고 탄소는 적게 배출하는 ‘그린라이스 품종 연구 개발 사업’을 수행하는 등 벼 저탄소 재배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현재 연구 중인 이 재배 기술들이 추후 인공지능을 활용한 노지 디지털 농업기술과 접목하면 기후변화 대응이 가능한 저탄소 디지털 재배 기반 구축과 함께 농업 분야의 기술 경쟁력 확보와 2050년 탄소중립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영농 주체인 농업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 어려움을 겪거나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농업인에 대한 배려와 지원 그리고 체계적인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식량작물 자급률 향상을 통한 식량주권 실현과 수입농산물 대책 등의 방안 마련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탄소저감에 대한 영농현장의 인식전환과 자발적 기술 실천을 유도하고 식량작물 저탄소 재배기술 보급을 위해, 농진청은 앞으로도 유관기관과 농업인 단체와 힘을 모아 노력해 나갈 것이다. 변화에는 불편함이 따르지만 이를 극복한다면 또 다른 기회이자 도약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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