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 달려갑니다, 가을걷이 한창인 들녘에 번진 미소와 그늘

전국서 가장 이르게 수매가 정하는
경기 여주·이천과 강원 철원 등
풍년 예상으로 판매 전략 수립 고심

수매가 높게 책정한
경기·강원 지역 일부 RPC는
경영 부담↑

풍년인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전북 지역은 도열병 등 병해충 몸살
벼 재배면적 절반 이상 차지하는
신동진 품종에 피해 집중돼
긴급재난지역 선포 등 대책 마련 요구

[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가을을 맞아 노랗게 물든 들녘에 선 농업인들의 얼굴에선 상반된 표정들이 포착된다. 추수가 한창인 지금, 어떤 지역에선 풍년에 기뻐하고 또 어떤 지역에선 도열병 등 병해충 피해 확산에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지난 1일 중만생종 추수에 돌입한 경기 이천 지역을 찾아 풍년 기대감에 들뜬 농업인들의 활기찬 모습을 취재하고, 이와 함께 도열병 확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전북 지역의 이야기도 담아봤다.

 

# 평년작 웃도는 풍년에 얼굴엔 웃음 가득

경기 이천에서 벼를 재배 중인 손종복 씨가 풍년이 든 추수 현장에서 작업 중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경기 이천에서 벼를 재배 중인 손종복 씨가 풍년이 든 추수 현장에서 작업 중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아침부터 경기 이천남부통합미곡종합처리장(RPC)에는 금방 거둬들인 벼를 가득 실은 차량들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직접 차량을 끌고 온 농업인들은 모처럼 맞은 풍년에 크게 만족스러워했다.

지난해 벼 재배 농가들은 태풍과 장마로 수확량이 감소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혹시나 올해 또다시 지난해와 같은 변수가 발생하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한 해를 보냈지만, 다행히도 올해는 기상여건이 좋아 평년작 수준의 생산량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추수 현장에서 만난 이천 어석1리 이장 손종복 씨는 최근 6~7년 사이 날씨가 이렇게 좋았던 적은 없었다올해는 태풍과 장마 피해도 없어 풍년인데다 벼 품질도 정말 좋다며 즐거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전남 지역도 평년작을 웃도는 풍년이 예상되고 있다.

전남 보성에서 벼를 재배 중인 박옥근 씨는 지난달에 비가 많이 와서 예상보다는 생산량이 조금 줄었지만 평년작은 너끈히 넘을 것이라며 이달 첫 주부터 수확을 시작할 예정인데, 이제는 태풍이 온다 해도 생산량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량 계약재배를 하고 있는 경기 이천남부통합RPC는 올해 조생종 수매 물량이 예상량보다 20% 정도 늘었다. 올해 3450톤 수매를 예상했지만 생산량이 늘어 총 4200톤의 벼를 수매했다. 이제 막 수매를 시작한 중만생종도 지난해 대비 10~15% 늘어난 약 13500톤을 예상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이르게 수매가를 정하는 경기 여주·이천, 강원 철원 등에선 올해 이 같이 풍년이 예상되자 판매 전략 수립에 고심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쌀과는 다르게 고품질 상품 전략을 취한 덕에 매년 수확기 이전에 물량 전량을 무리 없이 판매해 오고 있지만 지난해산 재고 소진 속도를 감안하면 안심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이천남부통합RPC는 올해 상반기에 지난해산 재고 물량을 모두 소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판매량이 주춤한 탓에 계획보다 3개월 늦은 지난 8월 중순 이후에야 학교급식, 마트 계약 물량 등을 제외한 모든 재고를 소진했다.

석재현 이천남부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이사는 올해는 생산량이 많은 만큼 월별 판매 전략을 조기에 수립해 내년 8월 말까지는 전량 판매한다는 계획이다올해 구축한 쌀 소포장 설비를 활용해 인터넷과 오프라인 매장 등을 통한 판매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수매가도 RPC로서는 부담스러운 요소다. 경기 여주·이천 지역은 40kg 조곡 기준 수매가가 지난해산 8만 원대에서 올해산은 최고 9만 원까지 뛰었고, 철원도 40kg당 최고가가 73600원에서 81600원까지 오르는 등 전년 대비 10% 이상 높은 가격대에서 수매가가 결정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급과잉 이야기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라 올해 높게 수매가를 책정한 경기·강원 지역 일부 RPC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 전북서는 예상못한 도열병에 침울

전북에선 도열병 등 병충해 피해가 확산되며 농업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제공=전북도 농업기술원]
전북에선 도열병 등 병충해 피해가 확산되며 농업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제공=전북도 농업기술원]

풍년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지역들과는 달리 전북 지역은 도열병 등 병해충으로 인한 피해로 몸서리를 앓고 있다. 추석을 전후해 줄곧 내린 비로 병해충이 빠르게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기준 이삭도열병 발생 추정면적은 3376ha로 전체 도내 벼 재배면적 대비 26.5%에 달했다. 세균벼알마름병과 깨씨무늬병 등도 각각 9.3%, 7.2%의 면적에서 발생하는 등 피해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적 중복 조사)

전북도 농기원 관계자는 기상청 통계자료를 살펴보니 지난 820일부터 지난달 6일까지 약 보름 동안 줄곧 비가 내렸고 기온도 20~25도 사이로 이삭도열병 발생에 적합한 기상조건이 형성됐다올해는 특히 출수기에 비가 와 방제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며 병해충이 급속도로 확산된 탓에 지금은 이전 조사 때보다 훨씬 광범위한 범위에서 병해충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815일까지만 해도 우리 지역에선 평년작 이상의 풍년이 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금은 평년 대비 5~8% 이상 감소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북에서 신동진 품종을 재배하고 있는 한 농업인은 풍년인 줄 알았는데 추석을 전후해 도열병 때문에 완전히 농사를 망쳐버렸다올해 농사에 대한 기대감이 우르르 무너져 버렸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일각에선 국내 최고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전북의 도열병 피해가 전체 생산량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전북의 도열병 피해가 크지만 어느 정도로 수율에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고 지역별로 작황 편차도 커 현재로서는 예상 생산량에서 얼마나 증감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섣부른 전망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전북도 농기원은 이번 피해를 기상조건 부합, 지난해 발생한 도열병의 포장 월동, 품종 특성 등 3가지 원인에 의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이미 도열병이 발생, 겨우내 포장에서 월동하던 병원균이 기상조건이 맞아떨어지며 활발히 활동하게 된 데다 20년 이상 재배돼 온 신동진 품종의 순도가 떨어져 병해충에 약해진 것도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번 피해는 특히 신동진 품종에 집중됐는데 전북 지역 내 신동진의 재배면적은 62.7%로 절반 이상을 차지, 피해가 컸다. 신동진 품종은 1999년 등록·보급돼 벌써 20년 이상 재배돼 온 품종으로, 신동진 대체 내병성 품종 보급 확대의 필요성이 강조돼 왔다.

전북 도내 농업인들은 이번 병해충 확산이 잦은 비 등에 따른 자연재해라고 주장하며 긴급재난지역 선포 등 특단의 대책 마련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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