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사)환경농업연구원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김정호 (사)환경농업연구원장

정부는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농업의 경쟁력 제고와 농가의 소득 증대·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1990년대 중반부터 투융자사업을 크게 확충해 왔다. 그동안 국고보조사업의 일부를 융자지원사업으로 전환했으나 현재도 국고보조금이 재정적 지원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농업 분야의 국고보조금은 경상보조와 자본보조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뉘어진다. 즉 경상보조는 사업비 지원의 성격으로 소득보전과 직불금 등이며, 자본보조는 자본 형성을 위한 보조로서 농업관련 시설물 설치와 자산 취득 등이 해당된다.

정부의 자본보조 덕분에 요즘 농촌에는 농업기계화나 시설현대화가 선진국 못지않은 수준으로 보급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편 농업보조사업의 추진체계는 사업 신청과 사업자 선정 - 보조금 교부 결정 - 집행관리 - 중요재산 관리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중앙정부는 사업계획 수립과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지자체는 사업 집행, 사후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2000년대 들어 지방자치단체의 적극행정이 확산되면서 농정 분야에도 상향식 자율농정 방식을 채택해 지자체 단위로 투융자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모습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추진주체인 보조사업은 재정운용 측면에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연계하는 기능을 가진다. 예컨대 중앙정부 보조금이 주로 농업경영체에 지원하도록 계획된 재원이지만, 지자체가 중심적으로 민간과 직접적인 연계를 통해 지역농업을 운영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지방분권이라는 자치농정의 의미를 살리고 지역 실정에 적합한 행정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요즘 언론에 자주 보도되듯이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확대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지자체의 보조사업 집행관리 과정에서 비효율적 운영이나 부정수급 또는 이불용 발생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중앙정부의 사업계획이 의욕적이라는 점이다. 농식품부는 재정지원사업에 대해 사업 목적, 주요 지원내용, 지원자격과 요건 등의 시행지침을 지자체에 시달한다. 이 지침에 근거하여 일선 시·군에서 사업대상자를 선정하고 정책자금을 집행하게 되며, 여기에 명시하지 않은 사항은 지역실정 등을 감안해 지자체장이 결정할 수 있다. 지자체에 상당한 재량권을 준 셈인데 당초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사업이 집행될 수 있다.

다음으로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경험이나 관리의 한계이다. 최근에 감사원이 지적한 사례를 보면 자치단체장이 중앙정부의 신규사업을 무리하게 도입해 추진함으로써 부적정한 예산을 사용하거나, 공공사업은 이익을 남겨야 할 필요가 없고 파산할 염려도 없으므로 무책임하게 경비 지출을 초래한다. 또한 나아가 사업 성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사후관리에 소홀한 행정문화로 인해 시설 설치 후에 방치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어 농업경영체의 자질과 능력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특히 농업법인들이 보조사업 수혜가 많은데, 제도의 취지대로 협업화나 기업경영의 유리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대형 시설투자를 위한 정책자금 유치의 수단으로 설립하기도 한다. 유명무실한 법인이나 부실경영 사례가 선행연구에서 많이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으로 청산 절차를 이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농업보조사업 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국고보조사업의 분야별 대상별 상호 관계를 고려하여 관련 예산이 효율적으로 편성되고, 둘째, 지방자치제의 틀 안에서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각종 보조사업이 합리적으로 관리되며, 셋째, 농업보조사업 시행에 따른 편익이 농업인과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성과주의를 준수하면서 정상적으로 집행돼야 한다.

국고보조사업이 눈먼 돈처럼 쓰인다는 언론보도를 대할 때마다 농정연구자로서 필자의 심정도 씁쓸하기만 하다. 이제 한국농정도 선진국 지위로 승격됐으니 현명한 중앙정부성숙한 자치단체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농업보조사업이 농업 발전과 함께 계속 진화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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