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 두 개의 딜레마에 직면

-탄소중립·디지털 전환 위해 열심히 보다 방향성이 더 중요

-충분히 준비 돼야만 효과 발휘

바둑에서는 ‘손을 빼다’라는 말이 있다. 격돌이 벌어지는 전장을 피해 의외의 점에 돌을 놓는 걸 의미한다. 바둑의 고수들이 판세를 바꾸고 싶을 때 자주 손을 빼는 수를 둔다. 
 

지금 농업은 두 개의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어려운 난제이다. 더군다나 고령화와 규모의 한계에 직면한 우리 농업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에서 발표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따르면 농수산 분야는 2018년 배출량 대비 25.9%를 줄여야 한다. 이 수치가 전체 국가 감축 목표인 40%와 비교하면 작아 보이지만, 2050년 농수산 분야 감축 목표와 비교하면 최대 70%에 달한다.

30년 동안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을 앞으로 9년 동안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내용보다는 속도의 압박이 상당하다.
 

협상에서 일단 목표한 수치가 정해진 만큼 그 이후의 모든 행동은 그 숫자에 구속된다. 대부분의 논에서 간단관개를 실시해야 하고, 약 800만 톤의 가축분뇨는 퇴액비화 대신 에너지화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

가축 사료의 단백질 함량을 줄이고, 소의 트림에서 메탄을 줄이는 새로운 종류의 사료도 그때까지 어느 정도 실용화돼 보급돼야만 한다. 더욱더 변덕스러워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농업 생산성도 꾸준히 높여가야 한다. 이 모든 걸 동시에 해내야 한다는 의미다.
 

농사란 원래 그 지역의 기후에 맞춰 발전해왔다. 
 

기후에 맞는 작물을 선택하고 관개시설을 확충하고 시설재배를 발전시키면서 농업도 기후의 제약을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하늘의 뜻을 거스르기는 여전히 어렵다. 봄에 수시로 내리는 서리, 봄 가뭄과 가을장마, 여름 우박까지 기후는 점점 더 예측을 어렵게 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토마토 작황이 나빠 햄버거에서 토마토가 사라졌고 쌀 생산량은 1970년대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농업의 디지털 전환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자동화된 기계가 노동력을 대체하고, 날씨 변화를 예측해서 적절하게 농장을 관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

디지털 기술은 더 적은 비료로도 더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는 정밀농업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더 작은 수의 젖소에서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이 모든 기술은 이미 손쉽게 이용 가능하다.
 

탄소중립은 산업혁명 이후 우리 삶을 지탱해왔던 석유 문명이 종말을 고하고 신재생에너지 시대로 전환된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가 익숙하던 대부분 세계는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게 될 수밖에 없다. 경운기의 엔진소리는 전기 모터로 대체되고 비닐하우스를 덥히던 석유도 전기로 바뀐다. 
 

석탄발전소가 사라지는 대신에 태양광과 풍력이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면서 도시나 농촌에 사는 누구도 발전소와 이웃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농산물을 소비하는 고객들도 변해갈 것이다. 농축산물이 어떤 환경에서 생산되었는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고기 대신 다른 대체식품을 찾는 소비자도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변화의 시점에 서 있다. 그런데 농업 현장을 둘러보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누구나가 걱정한다.

9917(3000 평) 미만의 농가가 70%를 넘어가고 농장주의 고령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접어들어 새 기술에 대한 투자 여력은 고갈돼 간다. 정부에서도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될테지만 충분히 준비가 돼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은 어쩌면 지금 집중하고 있는 일에 손을 빼고 어디로 행마를 움직여야 할지 돌아볼 때이다. 전환의 시대에는 열심히 보다는 오히려 방향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토론회와 강의가 여러분 주변에서 열리고 있다. 함께 참여해서 같이 만들어가면 어떨까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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