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 서울대 명예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농업, 생명을 돌보는 산업될 것

-우리는 지금보다 정성을 다해 동식물을 돌봐야

생물이 물질대사에 필요한 물질을 얻는 방법에 따라 생물을 종속영양생물과 독립영양생물로 나눌 수 있다. 종속영양생물은 다른 생물이 만들어 낸 유기물을 먹이로 삼는 것으로서, 주로 동물이 이에 속한다. 독립영양생물은 다른 생명체에 의존하지 않고 공기, 물, 태양광 등을 광합성과 같은 방법으로 자력으로 영양분을 얻는 것으로서, 주로 엽록소가 있는 녹색식물이 이에 속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가 생겨난 것은 45억 년 전이고, 지구상에 생명이 나타난 것은 35억 년 전이라고 한다. 처음에 나타난 생물은 종속영양생물이었다. 원시 해양에는 많은 유기물이 있었고 대기에는 산소가 아직 없었으므로 이들은 대양의 유기물을 섭취하고 무산소 호흡을 하여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이들 종속영양생물들 때문에 대양의 유기물이 급속히 감소하고 이산화탄소가 증가하자 이번에는 태양광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얻고 산소를 배출하는 독립영양생물이 번성하게 됐다. 대기 중의 산소는 오존층을 형성해 자외선을 차단했고 비로소 육상에도 생물이 살 수 있게 됐다. 5억 년 전에 등장한 육상식물은 활발하게 광합성을 해 유기화합물을 합성하고 공기 중에 산소를 내뿜었다. 대기 중에 산소가 축적되게 되자 다시 산소호흡을 하는 종속영양생물이 출현했다. 3억5000만 년 전에는 육상에도 동물이 살기 시작했고, 300만 년 전에는 드디어 인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직립원인이 나타났다.  
   

인간 역시 하나의 종속영양생물에 불과하므로 여러 가지 영양소가 포함된 다른 생물을 끊임없이 먹어야 한다. 그러나 인류는 먹을 것을 얻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다른 생물들과 구별된다. 처음에 인류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수렵·채취를 통하여 먹을 것을 얻었으나, 약 1만 년 전에 농경생활로 전환하게 됐다.

농업의 시작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렵·채취생활은 한곳의 나무열매나 사냥거리가 고갈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만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이동생활의 연속이다. 반면에 농경생활은 한 곳에 머물러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생산해 낸다는 점에서 독립영양생물인 녹색식물의 삶과 비슷하다. 
 

인류가 먹을 것을 생산하는 방법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그 변화 속도는 점점 가속화 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24시간이라고 할 때 농경사회의 역사는 5분이 채 안되고 근대화된 산업사회의 기간은 6초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6초 동안 인류는 무서운 속도로 비료, 농약, 기계 등을 이용한 새로운 농법을 개발하고, 식량 생산의 양을 증가시켰다. 20세기 초에는 공기 중의 질소를 뽑아내어 식량작물 재배에 이용하게 됨으로써 더욱 독립영양생물과 흡사하게 됐다. 
 

과학과 지식이 더욱 발달해서 인류가 완전한 독립영양생물, 즉 먹을 것을 다른 생명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생물이 된다면 생명을 길러 먹을 것을 얻는 산업인 농업은 어떻게 돼야 할까? 농업은 생명을 기르되 그 생명을 빼앗지 않는 산업, 즉 생명을 돌보는 산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농업이 생물의 생명을 빼앗는 산업에 머물러 있는 것이 우리의 무지 때문이라면, 우리는 농업이 기르는 동식물을 좀 더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 돌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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