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김창동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당장 내가 죽겠는데도 나보다 어려운 남을 도우려는 애틋한 정성표현의 모습은 정말 보기 좋다. 멀리 타국에 나가서 큰 꿈을 이룬 사업가는 특정 대학에 1000억 원을 쾌척하는 통 큰 자선을 보였다. 어린이 초등학생들도 군것질 값을 아껴서 자선냄비에 고사리 손을 보탠다.

정말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는 원초적으로 ‘남을 돕고 싶어 하는’ 착한 심성의 DNA가 흐르고 있지 않나 싶다. 타인의 아픔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주인 없는 쌀독부터 얼굴없는 거액의 천사들까지 찬바람이 뼛속을 파고드는 동장군의 계절에는 특히 미담이 넘쳐난다. 어려울 때일수록 남을 더 돕는다는 의미가 아닌가.

땟거리가 없는 집이 혹여라도 이웃에 부담이 될까봐, 가마솥에 찬물을 붓고 군불만 때던 시절에 일본 순사에게 쫓기는 급박한 상황의 이웃을 기꺼이 치마폭에 숨겨서라도 위기를 모면케 해주던 여인네들의 선한 지혜는 면면히 흐르는 우리 후손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농축산업계에도 지금 수많은 나눔의 미담이 넘쳐나고 있다. 김장김치 나눔부터 연탄봉사, 고기·생필품·라면·쌀과 부식을 동원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등 불우이웃 소외계층에 온정의 손길을 펼치고 있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 했던가.

올해 연말에도 어김없이 적십자봉사회, 새마을 부녀회, 생활개선회, 고향주부모임 등 여성단체 회원들의 몸사림 없는 현장봉사가 온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의 두드러진 희생봉사 정신은 극찬사를 받아도 부족하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이 대책 없이 쏟아내는 ‘50조 원’, ‘100조 원’ 하는 헛 공약은 믿거나 말거나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의 작은 성심 하나하나가 차디찬 윗목을 덥히는 군불 역할을 하는 격이다. 

여기서 하나 지적한다면 무슨 무슨 미트 하는 기업 축산인들과 대규모 100억 원 단위 축사거래를 하는 규모화 축산인들이 이 대열에 힘을 더 보태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화두, 양극화가 농어촌사회에도 어김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경종농업인과 축산인들의 부의 축적 차이다. 

경종농업은 농업소득 1000만 원을 논하고 축산업은 1억 원 대를 구가하고 있다. 적나라한 양극화다. 10년 이상 지속되는 축산 호황 속에 외제차 타고, 00데이비슨 바이크 여행하며, 마린투어까지, 자신을 과시하고 즐기는 데는 아낌없이 투자를 하면서도 나눔실천은 제로행태를 보이는 축산인도 꽤 있어 전체 축산인들이 도매급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축산은 이제 소위 MZ세대들도 5만 원 이상 조각투자 붐을 일으킬 정도의 매력을 보이는 업이 됐다. 

“있을 때 잘하고 잘 나갈 때 뒤돌아 보자”는 말은 그냥 흘려보낼 말이 아니다. 가진 자의 책임을 다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하자는 말이다.

오늘날 축산업의 화려한 부활 뒤에는 말 없는 지역민들의 인내와 고통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실히 기억해야 한다. 축산업이 왕성한 지역은 땅 값이 헐한 것, 그 사실 한가지 만으로도 모든 것이 입증된다 할만하다.

소비자의 안전먹거리를 지켜주는 당당한 산업역군으로서의 자부심을 공고히 하기에는 이런 면에서의 노력도 더욱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 오미크론 확산속에 코로나19 공포가 만만치 않다. 서로 도와서 이 겨울을 잘 이겨 내야 ‘꽃 피는 새봄’을 다 같이 맞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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