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 서울대 명예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한국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은 고투입

-집약농업 대세라는 현실론 ·평행선 달려 

-새해는 비관론 수용하고 반대론과 타협하는 참을성 있는 호랑이가 되길

또 한 해를 지내고 새해를 맞이한다. 코로나19의 와중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심정은 착잡하다. 모든 일이 잘되고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 낙관적인 생각과 모든 여건이 악화돼 침체의 늪으로 빠지게 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생각이 교차한다. 낙관론을 헐뜯을 것도 없고 비관론을 얕잡아 볼 필요도 없다. 낙관론과 비관론은 모두 필요하다.

“낙관주의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주의자는 낙하산을 만든다(버나드 쇼)”는 말처럼 낙관적 생각은 앞을 향해 나아갈 힘을 북돋고 비관적 생각은 신중하게 위험에 대비할 태세를 갖추게 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은 그것이 낙관적인 것이든 비관적인 것이든 항상 인류를 자극해 발전하게 했다. 예를 들어 사람 대신 기계가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 사람처럼 생각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비전은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을 일으켜 인류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식량생산의 증가가 인구의 증가를 감당하지 못해 인류가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맬서스의 경고는 인류로 하여금 식량위기에 대비하게 하여 75억 명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 생산이 가능하게 했고, 자본주의가 멸망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스스로 그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게 해 오늘날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자본주의가 세상을 주도하게 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 농업·농촌을 변화시킨 정책들 역시 엇갈리는 비전의 산물이다. 농지개혁은 농업인들이 자기소유의 농지에서 열심히 일하면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고, 통일벼로 대표되는 증산정책은 과학과 농지개발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신념에서 비롯됐다. 1990년대 농산물 시장개방과 함께 시작된 농업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융자 정책은 외국에서 수입되는 농산물에 밀려 우리 농업이 쇠퇴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시작됐다. 최근 추구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농업 역시 과도한 농업 생산이 환경을 악화시키면 건강하고 안전한 농산물 생산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인식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들이 모두 계획대로 수행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낙관론과 비관론의 균형,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타협이 불가피하고 계획과 다르게 변화되기도 한다. 농지개혁은 평등한 분배가 소유권을 부정하고 효율성을 해치는 것이라는 반대 속에 시행되었고 한국전쟁 등으로 10년 이상이 소요됐다. 증산정책은 통일벼를 비롯한 많은 우수한 품종 개발과 농지 확보에 기여했으나 일부 품종은 기대했던 것만큼 환영받지 못했고 새만금 간척과 GMO 논란 등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농업 투·융자 정책은 시설원예와 축산업 발전에 큰 도움을 줬지만 생산제일주의에 치우친 과잉 투자라는 비판을 비껴나가기 어려웠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농지가 좁은 한국에서는 고투입 집약농업을 하는 것이 대세라는 현실론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임인(壬寅)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한다. 음양오행에 의하면 임(壬)은 물을 뜻하고 인(寅)은 나무를 뜻하니 나무가 물을 만난 것처럼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사납고 강한 호랑이의 성격처럼 거친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호랑이 상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동굴 생활을 참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한 호랑이다. 새해의 호랑이는 비관론을 수용하고 반대론과 타협하는 참을성 있는 호랑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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