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사)환경농업연구원 원장·농업경제학 박사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입춘(立春)과 우수(雨水)를 지나 봄이 가까웠는데 농업계를 비추는 햇살은 그 어느 해보다 따뜻하지 않은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계속되는데다 농산물 시장개방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월 1일에 세계 최대 규모의 ‘메가 FTA’라 불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에 가입한데 이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에 가입도 임박해 있다.
 

RCEP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하나의 자유무역지대로 통합하는 협정이다. 아세안 10개국(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과 한국·중국·일본 3개국, 호주·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RCEP의 위상은 2019년 기준으로 무역액이 5조4000억 달러에 달하고, 경제규모로 보면 대략 전 세계의 30%를 차지한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통합을 목표로 추진된 협력체로서, 미국이 주도하다가 탈퇴한 후 일본과 호주·캐나다·멕시코·칠레 등 11개 국가가 2018년 12월에 출범시켰다. CPTPP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의 13%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최근에 중국과 대만이 회원 가입을 신청하는 등 경제질서의 변화가 감지되면서 우리 정부도 올해부터 가입 절차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메가 FTA가 체결되면 회원국들은 관세 인하뿐만 아니라 원산지 규정이나 통관 절차와 방식 등을 통일시킴으로써 교역 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 RCEP은 관세 철폐율(품목 수 기준)이 91%이고, CPTPP의 관세 양허율(즉각 철폐 혹은 단계적 감축)은 95~10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RCEP이나 CPTPP의 회원국들은 대부분이 농산물 수출국이므로, 우리 농업에 대해 기존의 양자 FTA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다시 말할 것도 없이 한국 농업은 영세한 가족농 구조이기 때문에 다른 산업에 비해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실정이다. 그동안 WTO 출범과 FTA 진전 등 시장개방에 대응해 1990년대 이후 농업구조개선시책을 비롯한 대규모 투융자 지원을 통해 영농규모 확대를 지원하는 등 다방면으로 경쟁력을 향상시켜 왔으나, 아직도 전체 농가의 약 절반이 자급적 영농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메가 FTA 시대에 한국 농업이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존과 경쟁’이라는 투트랙(Two track) 전략을 강력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 농업이 공익 기능을 발휘하면서 ‘생존’하는 동시에 K-농식품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해 ‘경쟁’하는 전략이다. 그동안의 FTA 대책이 추구한 농업 체질 개선과 품목별 경쟁력 강화라는 보텀업(bottom-up) 시스템을 한층 강화하는 방안이다.
 

먼저, 우리 농업의 공익 기능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위한 직불프로그램을 확충해야 한다. 농업·농촌이 식량안보를 지키고 환경과 생태를 보전하며 전통문화와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공익직불제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유럽식 ‘직접지불금’이라는 명칭도 ‘공익기여직불’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보조금액도 대폭 인상해야 한다.
 

이러한 소득정책을 바탕으로 ‘농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농산업의 경쟁력은 산업의 주체인 사람과 경영체의 경쟁력을 근간으로 한다. 또한 농업경영체의 경쟁력은 내부 역량을 바탕으로 외부적인 도움을 받아 축적되는 것이므로, 현재의 농업경영체 역량을 평가하여 그에 적합하게 지원하는 방식이 긴요하다. 농업경영체가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스스로 성장가능 요인을 찾아 한 단계씩 도약할 수 있는 육성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시장개방의 파고를 넘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지 어느덧 30년 세월이 흘렀다. 이즈음에 두려워하지 않고 희망을 얘기하는 농업인들에게 한국 농업의 미래를 기대하며 이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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