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격리 의무시행·양곡관리법 개정·식량작물 안정적 수급대책 ‘시급’

AFL 연속 지상좌담회

[농수축산신문=이한태·박현렬·이문예 기자]

최근 정부의 역공매 최저가 입찰 방식의 쌀 시장격리를 규탄하는 농업인들의 목소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2020년 변동직불금제를 폐지하고 쌀값 안정을 위해 법적으로 제도화된 시장격리제도가 오히려 쌀값 폭락을 부추긴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이다.

농업관련 단체는 물론 국회까지 나서 실효성을 잃은 양곡관리법 개정과 함께 쌀을 비롯한 식량작물의 안정적인 수급대책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차기정부가 추구해야 할 식량정책 방향에 대해 농업계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 이은만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

“양곡관리법이 제대로 작동되려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쌀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보완점과 대비책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가장 먼저 양곡관리법에 따른 자동시장격리제가 제때 발동돼야 한다. 이미 지난해 11월 통계청의 쌀 생산량 조사결과에서도 생산 과잉이 예상돼 자동시장격리 조건을 충족했지만 정부는 12월 말이 돼서야 시장격리를 뒤늦게 공표했다. 이 때문에 불안감에 휩싸인 농업인들이 저가에 벼를 시장에 내놓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법이 느슨해서 생긴 문제다. 양곡관리법에 일정 기준 충족 시 자동시장격리를 ‘할 수 있다’가 ‘해야 한다’로 명시적 문구를 삽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의 양곡정책에서 이제는 쌀이 아닌 벼가 기준가가 돼야 한다. 벼를 생산하는 농업인들과의 약속인데 가공·유통업자를 거친 생산물인 쌀을 기준가로 논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양곡관리법에서 다뤄지는 모든 가격이 벼 가격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전국평균가를 기준으로 한다면서 경기와 강원 등 일부 고가미를 제외한 것도 문제다. 이는 저가정책으로 가겠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의 모든 통계를 바탕으로 평균가를 제시하는 등 농업인들이 납득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양곡수급안정위원회의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에도 양곡수급안정위가 개최돼 왔지만 단순히 의견 수렴기구에 그쳤을 뿐 논의 내용이 직접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이 같은 위원회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시의적절하게 여러 사안들이 양곡수급안정위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여기서 도출된 결론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양곡수급안정위가 중요 결정기구로 존재해야 한다.”

■ 차상락 농협RPC전국협의회장(성환농협 조합장)

“현재 양곡관리법의 가장 큰 문제는 변동직불금을 없애면서 실시하기로 한 시장격리가 정부의 의지에 의존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해야 한다’여야 하는데 현행 양곡관리법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의지에 따라 시기나 방식이 결정되는 구조여서 농업인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최근 실시된 시장격리 역시 농업인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지난해에 실시했어야 할 시장격리를 질질 끌다가 마지못해 실시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오랜 조합장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역공매 최저가 입찰방식의 시장격리와 쌀이 물가상승의 주범인 것 마냥 몰아가는 모습에 많은 농가가 분노를 참지 못했다. 게다가 농식품부에서는 후속 조치와 관련해서도 ‘쌀값이 떨어지면’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는데, 쌀값은 한번 떨어지면 제자리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쌀이 5만 톤만 많아도 가격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수개월이 필요하다. 농번기를 앞두고 농업 현장에서는 벌써 투매가 우려되고 있다. 쌀값이 더 떨어질 게 뻔하니 재고로 가지고 있어봐야 부담만 커진다는 것이다. 정책 당국의 책임있는 자세와 농업인을 위한 진정성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한 시점이다.

아울러 현재 농업인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양곡관리법뿐인 만큼 과거 변동직불금을 없애면서 개정한 양곡관리법 상 시장격리의 취지가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양곡관리법을 다시 바꿔서라도 농업인이 안심하고 농사지으며 일정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밥 한 공기 1000원 밖에 하지 않는 쌀 가격을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쇄신하고, 농협 매입 평균가격과 공공비축미 가격의 중간 정도로 추가적인 시장격리를 이달 중에 서둘러 실시해야 할 것이다.”

■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최근 쌀 관련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양곡관리법을 개정하면서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도입한 시장격리제의 한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변동직불제는 생산농가의 소득을 일정 수준으로 안정시켜주는 기능을 했지만 시장격리는 이러한 부분에서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특히 시장격리는 시장에서 이미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시행되는 조치로 사후적인 대응을 하는 미봉책에 가깝다. 게다가 발동 기준과 효과가 모호한 현행 시장격리제는 변동직불이 가졌던 시장방어적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쌀 가격이 하락할 때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시장에서 격리된 쌀은 나중에 방출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잠재적 우려도 있다. 현행 시장격리제로는 변동직불제의 기능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다.

다만 농가소득을 일정부분 보전했다는 측면에서 변동직불제가 정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가격보험의 성격이 강했던 만큼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방안은 강구해 볼 수 있다. 가격보전직불제(CCP)나 약정수매제로 시장안정화 조치가 탄탄한 미국에서조차 수입보장보험을 통해 농가의 소득을 안정화시키고,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수입보장보험 등 단수뿐만 아니라 농가소득을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보험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나아가 선물상품이나 옵션상품을 통해 민간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파생상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농가 부담을 크게 줄이고 보험사뿐만 아니라 일반투자자가 위험을 받아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는 약정수매제를 실시하다가 변동직불제를 도입해 농가소득을 안정화 시켰지만 현재는 이마저도 사라진 무방비 상태가 됐다. 현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고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식량자급률 제고를 위해서는 과잉공급되는 쌀 이외에 국내 소비량이 많은 밀, 콩과 같은 주요 식량작물의 생산량을 전략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모작 식량작물을 대상으로 논활용직불(논에서 보리, 밀, 목초류와 같은 식량작물이나 사료작물을 재배할 때 ha당 50만 원의 일정액을 지급)을 지급하고 있다. 2000년대 세 번에 걸쳐 논에서 벼가 아닌 타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지원하는 타작물 전환 지원 정책(생산조정제, 논소득기반다양화, 논타작물재배사업)을 실시했으나 논타작물재배사업(2018~2020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우리나라와 농업 환경이 유사한 일본도 쌀 공급과잉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1970년대 초반에 도입된 쌀 생산조정제와 논활용직불이다. 과잉공급되는 쌀 생산량은 줄이고, 수요보다 공급량이 적은 밀과 콩 등의 전략 작물 생산은 촉진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쌀 생산량을 통제하는 정책을 펴는 한편 농가가 생산조정에 협력했을 경우 보상책으로 논에 벼 대신 밀이나 콩과 같이 자급률이 낮은 식량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지원했다. 2009년까지는 벼 면적감축 이행을 전제로 전작을 지원했으나 2010년부터는 이와 무관하게 전략작물을 지원·육성하기 위해 논활용직불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쌀 과잉공급을 개선하고자 타작물 전환 등을 촉진하는 정책을 시행했었다. 그러나 시행기한이 한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측 가능성까지 낮아 타작물 전환 실적은 크지 않았다.

이에 일본 등과 같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쌀 이외의 식량작물 생산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쌀의 생산 감축 관점이 아니라 식량작물 생산을 확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관점에서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지원단가와 관련해서는 작물의 재배시기 등을 고려해 설정할 필요가 있다.

동계에 재배되는 밀과 보리 등은 수입산과 경쟁해야 하므로 이들 품목의 생산비와 수입가격을 비교해 직불금 지급으로 국산 식량의 가격 경쟁력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계에 재배되는 콩 등은 벼와 경쟁해야 하므로 쌀 수익성과의 격차를 기준으로 단가를 설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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