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일 서울대 명예교수(도농상생국민운동본부 대표)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최근 도시민들의 농업·농촌에 대한 생각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1년 농업·농촌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시민의 83.6%가 향후 국가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 유지를 위한 추가 세금 부담에 대해 60.1%가 찬성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제도인 고향사랑기부제에 참여할 의향을 가진 도시민의 비율 또한 55.5%에 달함으로써 제도 도입을 위한 긍정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민 셋 중 한 사람은 은퇴 후나 여건이 되면 귀농·귀촌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지만 귀농·귀촌 희망 이유로는 자연속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53.0%,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서21.9%를 차지하는 반면 생계수단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4.3%에 불과한 점이 특히 주목된다. 귀농·귀촌의향을 지닌 도시민들이 원하는 이주형태로는 도시지역에서 농촌지역으로 생활거점을 옮기는 정주형태(46.8%)보다는 도시지역과 농촌지역 모두에 생활거점을 두고 주로 농촌 또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복수거점생활형태(49.1%)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현행 귀농·귀촌정책과 도시민들의 수요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보다 10년 남짓 앞서 2008년부터 전체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일본은 농촌활성화정책의 방향을 농촌상주인구 증가가 아니라 지연·혈연이나 업무상 관계가 없으면서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방문이나 기부 등으로 특정 농촌지역과 연고를 맺어가는 관계인구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2020년 설문조사에서는 도쿄·오사카·나고야 등 3대 도시권 거주 성인의 일상생활권·통근권 이외 지역과의 관계맺기 상황을 특정지역과 무관(58.2%) 지연·혈연이 있는 지역 방문(13.5%) 그밖의 지역방문(23.2%) 고향세 납부와 같은 지역기부(1.9%) 등 네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 방문관계인구의 유형은 다시 직접기여형, 취업형, 참가·교류형, 취미·소비형 등으로 세분된다. 직접기여형이란 일자리 창출, 지역진흥사업의 기획·운영, 협력, 지역진흥·자원봉사활동 참가 등을, 취업형이란 지역에서 IT(정보기술) 활용 원격근무나 부업활동, 지역기업 취업, 농업종사 등을, 참가·교류형이란 지역주민과의 교류나 행사, 체험프로그램 참가 등을, 취미·소비형이란 지연·혈연지역 이외에서 지역음식을 즐기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것을 각각 의미한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관계형성 단계로서 무관계(무관심) 지역특산품 구입 기부(고향세 납부) 자주 방문 봉사활동 복수지역 거주 이주 정착7단계를 예시하고 있는 것도 경청할 가치가 높은 실천적 접근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농경연의 도시민의식조사 결과와 일본 정부의 정책추진방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이미 전체인구 감소가 시작되고 수도권 인구집중이 한층 심화됨으로써 농촌지역소멸이 우려되는 최근 상황 아래서도 농촌지역 인구증가라는 비현실적 정책목표를 계속 고수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근본적 의문이다.

우리의 농촌활성화정책이 생활여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농촌정주 중심의 귀농·귀촌에 집착하기 보다 도시민의 농업·농촌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농촌과의 다양한 관계를 확충해가는 점진적 단계적인 시책을 내실있게 추진해가는 보다 실용적인 접근으로 전환돼 가야할 상황에 있지 않은지 돌이켜 볼 때가 아닌가 한다.

농지, 주거, 교육문화, 일자리, 의료복지, 교통·정보통신 등 다양한 생활여건의 미비로 이주·정착 중심의 귀농·귀촌이 어느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 현실을 감안해 획일적인 이주·정착보다는 지역 특성에 맞게 복수거점생활형태나 관계인구 확충을 위한 여건을 갖춰가는 단계적 실용적인 접근으로 실효성을 높여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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