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큰 뜻을 위해 작은 것들은 희생해도 된다는 안일함’, 자신의 뜻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오만함’. 누가 봐도 경계해야 할 이 같은 태도는 최근 농업인들이 바라보는 정부의 모습이다.

정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을 당초 계획대로 이달 내에 추진한다고 밝혔다. 농업계는 연일 집회와 기자회견, 간담회 등을 개최하며 이 같은 계획의 철회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농업계가 이처럼 분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껏 세계적 시장개방 흐름에 발맞춰 국가와 수출 기업들의 성장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해 온 농업계에 정부가 또 다시 CPTPP 가입으로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농업계는 정확한 피해 규모를 추산하고 여기에 걸맞는 피해 대책들을 내놓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정부는 피해 규모에 대한 자료를 비공개로 유지하다 지난달 25일 열린 산업통상부 주최 공청회 발표자료를 통해 CPTPP 가입으로 농림축산업 부문에서 15년간 연평균 최대 4400억 원의 국내 생산 감소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마저도 우리와 인접한 데다 세계적 농업 강대국인 중국 가입으로 인한 피해는 제외된 수치다.

이에 더해 정부는 농업관련 단체와 농업인들이 강당을 점거해 공청회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음에도 형식적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고 이달 내 가입 추진 입장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 CPTPP 가입을 불과 한달여 남긴 시점에서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농업계에 더욱 거센 분노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농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제는 국회에서도 나서는 모양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윤재갑 의원(더불어민주, 해남·완도·진도)은 오는 19일과 26대한민국 식량주권을 위협하는 CPTPP,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한다.

이쯤되면 정부도 자신들이 정한 방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농업인들의 철회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 농업의 생존이 걸린 사안인 만큼 숨 한번 고르며 시간을 두고 면밀한 계획을 세워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말이다.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그 의지는 때로는 성과는 거두고 책임은 새정부에 미루겠다는 무책임한 말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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