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홍정민 기자]

 

토머스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란 표현을 했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면서 모든 생명체가 겪게 되는 고뇌를 그렇게 묘사했다고 한다. 중국 춘추시대 말, 진나라 헌공이 괵나라를 치려고 통과국인 우나라에 길을 터줄 것을 요구했지만 우나라의 현신 궁지기는 속셈을 간파하고 우왕에게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강조했다고 한다.

지난 22일 금요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천막에서 투쟁 66일차를 보내고 있는 한국낙농육우협회 지도부에게도 올 4월은 역사 속에서 그렇게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현장에서 만난 이승호 협회장은 여러 불만을 연이어 쏟아냈지만 그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농림축산식품부가 어려운 문제만 내놓고 답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는 강한 불만이었다. 낙농가가 사라지면 농식품부도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까지 더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8월부터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가 시행됐지만 관련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면서 정부는 지난해 낙농산업발전위원회를 발족한 데 이어 수차례 회의를 거쳐 낙농제도개선 정부안을 발표했다.

정부안의 핵심은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해 음용유쿼터와 가공유쿼터로 구분하면서 농가와 유업계의 입장을 동시에 충족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농가는 농가대로 유업계는 업체대로 정부안에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낙농가의 지도부인 협회는 정부가 제시한 개편 대책은 농가 소득 감소를 초래하기 때문에 재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 기저에는 유업체와 정부가 결탁해 일방적으로 낙농제도 개편을 추진했다는 불만과 불신이 내재돼 있다.

하지만 유업계는 현행 연동제가 시장의 수급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제도여서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해 학계와 소비자측은 어떤 입장일까. 낙농제도개선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지금처럼 급하게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데 지금처럼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논의 과정에서 정해 놓은 틀을 고수하는 상황에선 설득은 고사하고 누구도 한 발짝 양보하기 힘든 형국이란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앞으로 동물성 단백질의 식량무기화 가능성이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이는 데다 환경규제로 인한 생산 감소 가능성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수입까지 감안한다면 국내 낙농산업 역시 국제경쟁력을 갖춘 식품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제적인 노력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낙농제도개선이 정부의 일방적 추진이나 생산자측의 소위 떼법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산업의 각 주체들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높여나가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제도를 바꾸는 것이 여러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다보니 쉽지 않은 난제이긴 하지만 현답을 찾는 지혜를 함께 발휘하기 위해 우선 농성현장을 찾고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만날 것을 권유하고 싶다.

정부, 농가, 업계 등은 국제경쟁 속에서 서로에게 순망치한의 관계라는 점을 직시하고 만약 시간적인 한계로 현 정부에서 힘들다면 다음 정부에선 최우선 순위에 놓고 낙농 문제를 제대로 잘 풀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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