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조선시대 고위공무원 선발과정의 마지막 관문 중 하나는 책문(策問)이다. 대과를 통과한 합격자 33명은 임금이 제출한 책문에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평균 12m에 이르는 대책을 작성했다. 책문은 당락이 아닌 합격자의 등수를 정하는 시험으로 관료가 되려는 자의 역사의식과 정치철학, 교양을 평가해 순위를 매겼다.

광해군 3(1611) 치러진 별시 문과의 책문(策問)에서 광해군은 선비 임숙영에게 깊은 못과 살얼음을 건너야 하는데 건너갈 방법을 모르듯이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라는 책문을 출제했다. 이에 선비 임숙영은 왕실 친족의 폐정에 대해 날선 비판을 제기하며 임금의 잘못은 국가의 병이라고 답했다. 이에 격노한 광해군은 임숙영을 삭과(削科)할 것을 지시했으나 대소신료들이 반발하면서 결국 광해군이 한발 물러서는 것으로 이른바 삭과파동이 일단락됐다.

어업인들은 광해군 3년으로부터 400여년이 흐른 대한민국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관료를 경험한 바 있다. 김영석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김 전 장관은 2017년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바닷모래채취 중단을 해수부의 입장으로 하겠냐는 당시 여당 의원의 질의에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대신 어업인들이 해수부의 폐지를 거론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금도를 넘는 얘기라며 발끈했다.

오는 10일이면 윤석열 당선인이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의 해수부 수장에게는 세계무역기구(WTO)수산보조금 협상과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따른 피해, 해상풍력발전 확대로 인한 어장 축소, 2050탄소중립의 영향 등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수산업계를 보호해야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해수부 장관은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 어업인의 입장을 대변해야한다. 해수부 장관이 CPTPP나 해상풍력발전 등 현안에서 정책고객인 해양수산인을 보호하는 대신 이른바 힘있는 부처의 눈치만 봐서는 안된다.

해수부의 새 수장이 나라를 위해 직언했던 임숙영이 될지, 정책고객보다는 힘있는 부처와 청와대의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전직 장관처럼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2017년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의 김 전 장관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면 어업인들은 또다시 해수부 해체를 주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해수부의 새 수장이 임숙영의 자세로 해양수산인을 위한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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