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스리랑카는 1960년대 녹색혁명으로 쌀, 밀의 생산성을 현저하게 높여 1990년대 말에는 농산물의 주요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연이은 경제정책과 농업정책의 실패로 식량안보 위기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문제의 출발은 지난해 4월 과학적 검증 없이 하룻밤 사이에 일체의 화학농약과 화학비료의 수입을 금지하고 전 세계 최초로 100%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전 농업인에게 강제로 실시한 것에서 기인했다.

많은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행한 이 정책은 6개월 후 주요 작물인 쌀과 차의 수확량이 30%이상 감소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 후 화학비료의 수입을 재개했다.

이 결정의 이면에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관광수입이 급락해 50억 달러를 밑도는 외환보유고 때문에 연간 5억 달러에 이르는 화학비료의 수입을 막은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추진하기 위해 스리랑카 대통령은 정책에 반대하는 농림부의 농업전문 관료들을 해임하고 전국 140여 명의 농과대학 교수들의 반대의견도 묵살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말 유기농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이 분야의 선도국인 쿠바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농식품부 장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시에 많은 전문가들이 실제로 쿠바를 방문했다. 그러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수출국 통계자료를 보면 당시 쿠바로 수출되는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의 규모가 연간 5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단지 쿠바가 FAO에 이 내용을 보고하지 않아 정보의 투명성이 훼손되고 있었지만 쿠바의 주장을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최근에 유럽연합(EU)이 발표한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Fork)’와 생물다양성 전략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목표로 하는 EU 그린 딜의 핵심적 내용이지만 실현가능성 여부에서는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2030년까지 농약사용량 50%, 비료사용량 20%를 감축하는 내용이 담긴 EU로드맵에 대해 농업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네덜란드 와게닝겐(Wageningen) 대학의 연구진 보고서에 따르면 동기간에 EU에서의 작물생산량이 10~20%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이러한 감소는 새로운 육종기술과 같은 연구개발(R&D) 분야에 투자가 있어야만 부정적인 효과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식량안보는 정권의 차원에서 근시안적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 특히 전 세계 대비 인구의 0.7%를 차지하는 우리나라가 경지면적은 0.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경지면적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곡물자급률이 20%대를 유지하는 것도 농업 R&D와 인프라 투자에 따른 농업생산성 향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기술 투자를 소홀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유발해 전 세계 역사를 바꿀 정도로 심각했던 감자역병에 대해 한 다국적 농업기업이 인공위성 영상, 작물생육, 미세기상 정보자료 등을 바탕으로 한 알고리즘을 개발해 발생 3일전에 농업인에게 예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 기술이 5년 간의 연구 끝에 상용화됐다. 마찬가지로 우리 농업도 애그테크를 바탕으로 농업이 쉬워지고 기술경쟁력이 있어야 젊은 인력을 농업으로 유입할 수 있다. 농업을 단지 생산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유통, 가공을 거치는 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시키면서 ‘10년 후, 20년 후에는 누가 한국농업의 주체가 되어야 할까?’에 대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된다.

올바른 정보에서 올바른 정책이 나온다는 상식이 통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
김용환 교수의 글로벌 농산업 '트짚'은 격월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김용환 교수는

- 서울대 농화학과 농학박사
- 현 한국분석과학기술원(KASTI) 농업분야 최고기술경영자(C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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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산학협력교수
- 현 LG연암학원 이사
- 전 제주대 생명자원과학대 석좌교수
- 전 한국농약과학회 회장
- 전 팜한농 대표이사(CEO)
전 신젠타코리아 대표이사(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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