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오염 주범 폐어구가 패션제품 등 깜짝변신…ESG경영 확산에 관심 기업 늘어
최근 다국적 기업 중심으로 폐어구 재활용한 소재 사용 사례 늘어
기업에서 폐어구 확보 등 나서고 있지만 정작 폐어구 원활한 수거 위한 기본적 인프라도 갖춰져있지 않아
지원위한 시스템 갖춰야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수산분야의 골칫거리였던 폐어구 처리에도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 기업들이 ESG경영에 나서면서 해양환경에 악영향을 미쳐왔던 폐어구를 수거·재활용해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에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폐어구 문제를 짚어보고 향후 폐어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는 순환경제에 대해 살펴본다.

# 발생량조차 알 수 없다

폐어구는 유실되거나 버려진 그물에 수산동물이 걸려서 죽게 되는 이른바 ‘유령어업’으로 수산자원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연근해에서는 유령어업으로 연간 어획량의 10% 가량이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금액은 3787억 원 수준으로 추정됐다. 또한 폐어구는 선박에 부유물 감김사고를 일으켜 어업인의 안전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폐어구의 발생량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연구로 연간 발생하는 유실·침적된 폐어구가 4만4000톤 수준이라는 추정치만 제시돼 있다. 이는 우리나라 어구는 주문생산방식으로 이뤄지며 어구의 생산·판매를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 없이 사업자 등록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어구의 생산과 유통단계에서 거래를 파악하기 어려워 발생량 파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폐어구가 수산업과 수산자원, 해양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정보축적도 미흡하며 어구와 관련한 독자적인 법령이 없고 전체 생애주기에 대한 관리가 어렵다. 특히 폐어구는 수산업과 수산자원, 해양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어구관리와 관련한 법률은 여러 법률에 나눠져있으며 이마저도 어구 전반을 관리하기 위한 규제가 없어 폐어구 발생을 차단하기 위한 법적 근거도 미약한 실정이다.

고동훈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근해어업연구실장은 ‘순환경제 시스템을 활용한 어업폐기물의 자원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에서 연간 사용되는 어구는 약 13만 톤으로 이는 적정 사용량 5만1000톤 대비 2.5배 가량 높은 수준”이라며 “정부에서 연간 많은 예산을 투입, 폐어구 수거에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현재 추정되는 폐어구 발생량과 비교하면 수거량은 아직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 경관 해치고 악취 풍기는 폐어구

폐어구가 바닷속에서 유령어업을 일으킨다면 바다에서 수거된 폐어구는 어촌마을의 경관을 해치고 악취를 풍겨 어촌 주민들의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다.

실제로 전국의 주요항포구 대부분에는 어업인 등이 수거한 폐어구가 적치돼있으며 제때 처리되지 못한 폐어구는 기온이 높아지면서 심각한 악취를 일으키는 등 어촌사회의 골칫덩이가 되고 있다.

이처럼 수거된 폐어구가 골칫덩이가 된 것은 폐어구 수거의 주무부처인 해수부가 폐어구를 수거하는데만 집중할 뿐 항포구로 적치한 이후의 일련의 처리과정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폐어구 수거는 정부의 위탁을 받아 해양환경공단과 어촌어항공단 등이 수행하고 있으며 지자체에서도 별도의 사업을 통해 폐어구 수거를 지원하고 있다. 해양환경공단은 해양폐기물 정화사업을 통해 바다의 침적쓰레기를 연간 3000~4000톤 가량 수거해 처리하고 있으며 어업인 등이 수거한 폐어구, 로프 등에는 200리터 당 2만 원의 수매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절차나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문제 등으로 폐어구가 제때 처리되기는 힘든 실정이어서 결국 주요 항포구에 폐어구 등이 적치돼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 ESG경영, 폐어구 문제 해결의 새로운 기회

최근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폐어구를 재활용한 소재를 사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기업의 ESG경영이 폐어구 처리를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아디다스, 나이키 등 다국적 스포츠용품업체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덕일섬유에 따르면 아디다스는 2025년까지 자사에서 생산하는 모든 신발제품에 재활용한 소재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나이키 역시 2025년까지 자사의 신발제품 50%를 해양플라스틱 등을 재활용한 소재로 생산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이 때문에 덕일섬유를 비롯해 태광실업, 창신아이엔씨, 화승, 파크랜드 등의 기업들이 다국적 스포츠용품 업체에 제품을 납품하는 국내 기업에서는 재활용원료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 상황이다. 섬유기업인 효성티앤씨에서는 지자체와 주요 기업, 공공기관 등과 해양폐기물 자원을 재활용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순차적으로 체결하면서 폐어구 등을 확보하는데 나서기도 했다.

기업에서는 이처럼 폐어구 확보 등에 나섰지만 정작 폐어구의 원활한 수거를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아 이들 기업의 기업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어촌 현장에서 폐어구를 수거·세척하는 기업에서는 폐어구의 위치만 알려주기를 원하고 있다.

고동훈 실장은 “수거된 폐어구가 어촌에 방치되면서 어촌주민이나 어촌을 찾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반면 폐어구를 재활용하려는 기업들은 어떤 어촌에 얼마만큼의 폐어구가 있는지를 알지 못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ESG경영이 확산되면서 해양폐기물의 재활용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동엽 덕일섬유 과장

폐어구 자원화 시스템 갖추면 기업이 세계시장서 선전할 수 있을 것

“폐어구 등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원료를 요구하는 기업은 앞으로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덕일섬유가 거래하고 있는 아디다스, 나이키 등 다국적 기업들은 가격이 비싸지더라도 재생원료를 사용한 제품을 원하고 있어 다국적 기업들이 요구하는 소재를 맞추지 못할 경우 버틸수가 없습니다.”

김동엽 덕일섬유 과장은 최근 다국적 기업들이 폐기물을 재활용한 소재를 활용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운을 뗐다.

# 재생원료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요구는 어떤가.

“폐어구 등을 재활용한 제품의 생산 등은 1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최근 3~4년 전부터는 다국적 기업들에서 시즌별 계획을 수립하고 본격적으로 재활용제품을 요구하고 있다. 스포츠용품브랜드에서는 아디다스가 ESG경영의 일환으로 가장 먼저 재활용소재를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고 나이키 등 다른 스포츠용품 브랜드들도 이같은 추세를 따라가고 있다.

일례로 섬유는 염색과정을 통해 색을 입히는데 아디다스에서는 탄소저감과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실을 만드는 과정에서 염색이 돼서 나오는 원착사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검정색 원착사는 실 원료 뿐만 아니라 색에 입히는 카본칩까지 재생원료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는 등 아주 구체적인 방안까지 요구하고 있다.

아디다스 등에 납품하는 국내외의 밴더들은 지난 수년간 겪으면서 익숙해지고 있지만 원료가 될 폐플라스틱이나 폐어구 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 폐어구 자원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최근의 언론보도를 보니 효성티앤씨가 폐어구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각 지자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왜 효성티앤씨가 지자체와 개별적으로 업무협약을 해야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폐어구는 알려진 것처럼 수산자원이나 해양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어촌마을에서는 폐어구가 제때 처리되지 않는다고 민원이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폐어구의 재활용에 적극 나서주면 해양환경과 수산자원을 보호하는 동시에 기업의 영업활동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폐어구를 재활용한 소재와 제품을 만드는 분야는 전세계적으로도 무주공산에 가깝다. 반면 다국적 기업에서는 이런 소재로 자사의 제품을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정부에서 폐어구의 수거부터 재활용에 이르는 전 과정과 관련한 시스템을 정비해준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폐어구를 활용한 제품시장에서 약진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나이키에 납품하는 전세계 주요 밴더사가 4개사인데 국내 기업인 태광실업과 창신아이앤씨가 밴더사에 포함돼있다. 또한 화승 역시 아디다스에 제품을 공급하는 밴더 중 세손가락 안에 들어갈만큼 중요성이 크다.

정부가 폐어구 자원화를 위한 시스템을 갖춰준다면 덕일섬유뿐만 아니라 이런 다양한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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