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산학협력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김용환 교수의 글로벌 농산업 '트짚(트렌드 짚어보기)'] 는 격월로 게재됩니다

윤석렬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를 선정하면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생명과학(BT) 산업 등이 선도하는 지식정보화의 물결이 우리 삶의 방식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달초 국무회의에서는 국가산업의 기반인 반도체 산업 관련 규제 개혁과 인력 수급방안이 긴급한 현안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는 ‘부의 미래’에서 사회의 변화 속도를 자동차 속도에 비유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업의 변화 속도를 100mph라 할 때 정부 규제기관은 25mph, 교육체계는 10mph로 매우 늦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으며 법률체계는 1mph로 가장 늦게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사회 구성요소들을 묶은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발전하려면 어느 특정 요소만 발전해서는 안 되고 전체 구성요소가 전반적으로 발전하는 ‘동시화’(synchronization effect)가 이뤄져야 해당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앨빈 토플러 박사의 주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혁신의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에 더욱 실감나게 가슴에 와닿는다. 
 

반도체 산업에서 보듯 ‘비동시화 효과(de-synchronization effect)’는 국가경쟁력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비동시화’가 과학분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첨단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바이오산업의 경우 전통적인 종자육종기술보다 짧은 기간과 적은 투자로 외부유전자의 삽입없이 필요한 형질을 개발해 주는 유전자 편집기술이 과거에 만들어진 규제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주요 농업국인 미국, 브라질, 중국, 아르헨티나, 호주, 일본 등은 외부의 유전자가 삽입되지 않는 유전자 편집기술의 상용화를 허용하고 있으며 유럽국가인 영국, 스위스 등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 붕괴를 경험한 인도, 중국과 같은 인구 대국들도 식량안보 차원에서 GMO를 비롯한 새로운 육종기술(NBT)에 대해 규제를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쌀, 토마토, 옥수수, 대두, 밀을 포함해 60개 이상의 작물육종에 이용되고 있다(EU-SAGE 참조). 개선된 작물의 형질은 다양해 농업인(가뭄이나 저온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형질 등)뿐만 아니라 소비자(영양성분 증대 등)에게도 이익을 준다. 대부분의 유전자 편집기술은 종래의 육종방법에서 얻을 수 있는 유전적 변화와 유사하지만 체계적이며 목표 부위에 특이적인 작은 유전적 변화를 만드는 기술로, 제한된 자원(농경지, 물, 노동력 에너지 등)에서 늘어나는 인류를 부양하는 지속가능한 파괴적 혁신기술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모든 유전자 편집 작물이 과거의 기술을 근거로 제정된 유전자변형물질(GMO)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고 유권 해석한 EU 사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상업적 접근이 뒤쳐져 있다. 따라서 높은 규제장벽을 넘을 수 없는 중소규모의 육종회사들에게는 시장진입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고 있다.
 

19세기 독일의 화학자이자 농화학자인 리비히는 식물의 생육은 공급되는 양분들의 합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양에 비해 최소로 공급되는 양분에 좌우된다는 ‘최소량의 법칙’을 발표했다. 모든 구성요소가 같이 발전해야 하는 동시화의 성공 여부에도 최소량의 법칙이 적용된다. 
 

인터넷 속도의 시대에 규제와 법의 속도가 과거와 같이 관행적으로 움직인다면 혁신의 동시화는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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