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 수출 제한되지 말아야
식량위기 국가에 더 많은 투자
식품 손실 감소
물과 비료의 효율적 사용
기술혁신 등 식량위기 대응 필요

[농수축산신문=최상희 기자]

김종진 소장
김종진 소장

 

국제 곡물 수급불안 사태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최근 국제곡물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되고 오는 10월부터는 수급불안이 다소나마 해소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이상기후가 가속화되면서 국제 곡물 수급 비상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본지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총괄하는 김종진 FAO아태사무소장과 서면 인터뷰를 갖고 현 곡물시장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 대책안에 대해 물어봤다.

# 현재 FAO가 파악하고 있는 식량 위기 상황은 어떤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으며 쌀, 생선, 우유, 계란, 과일, 채소 등과 같은 주요 식품의 최대 생산지이다. 그러나 FAO의 대표 보고서인 식량안보 및 영양상태(the State of Food Security and Nutrition)에 따르면 아태지역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의 수는 지난 5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한 달 전 발표된 최신 식량안보 및 영양상태 보고서에는 지난해 기아로 고통받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4억2500만 명)이 아시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FAO 식품 물가 지수가 지난 2년 동안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지난 3월에 최고 159를 기록한 점을 감안할 경우 하루에 미화 1.9달러 미만을 버는 가난한 사람들은 건강한 식단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아태지역을 휩쓸기 전에도 이 지역은 홍수나 가뭄, 지진,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급격한 도시화와 토양 황폐화, 물 등 천연 자원 부족, 사막 메뚜기, 담배거세미나방종,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같은 해충과 질병 등 난제에 직면해 있었다. 농업 투자가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으며 농업 생산성은 이미 수년간 하락하고 사람들은 농촌 지역에서 이주하는 추세가 있다. 유럽에서의 분쟁은 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주변국가들은 자국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농산물에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 제한이 수요를 위축시키지 않을 수 있으며, 농산물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다.

# 하반기 들어서 곡물가가 다소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의 세계 곡물 시장을 어떻게 보는가.

암울한 세계 경제 전망과 환율 변동 등 많은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세계 식량 안보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이 재개되면서 곡물 가격은 약간 하락했지만, 식량 가격은 여전히 높다. 지난달 FAO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월보다 13.3포인트(8.6%) 하락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16.4포인트(13.1%) 상승한 수치다. FAO 세계식량가격지수의 하락은 일시적으로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다. 다만 식량 가격은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상승했으며, FAO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지난 3월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높은 식품 가격으로 인해 가계는 소득의 대부분을 식품에 지출하게 되며 이는 인류 발달에 똑같이 중요한 교육과 건강 관리에 지출하는 비용의 감소를 초래한다. 글로벌 식량안보는 '5F' (Food, Feed, Fuel, Fertilizer, Finance) 요인으로 위협받고 있다. 유럽과 미주 지역의 대두, 옥수수 등 주요 곡물 생산이 가뭄으로 악화되면서 전쟁으로 치솟았던 식량 가격은 더욱 오를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전 세계 비료 공급량의 15%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비료 수출국이다. 러시아의 비료 수출은 연초 이후 약 20% 감소했다. 비료 가격 상승으로 인한 농업 투입재 비용 상승은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에너지 가격의 상승과 농업 투자의 감소는 전 세계 곡물 수확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우리의 최신 시나리오에 따르면 내년까지 1880만 명이 추가로 만성 영양실조에 빠질 수 있다.

# 식량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제 곡물가 급등사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농업 무역 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일부 국가가 곡물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비교우위에 의한 집중은 자원과 농업기술이 부족한 국가들이 주요 곡물생산자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이들 국가에서 가뭄, 폭염 등 기상이변이 발생할 경우 곡물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곡물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1990년 이후 8차례(1993년, 1995년, 2002년, 2003년, 2007년, 2010년, 2012년, 2014년)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 이중 7번의 가격 급등사태는 악천후가 주요 요인이었다. 2007~2008년 곡물가격 인상폭은 과거 곡물가격 급등 중 상승폭이 가장 컸다. FAO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7개월 동안 69.6%, 곡물 가격 지수는 88.3% 상승했다. 신흥국 수요 증가, 바이오연료 수요 증가, 주요국 수출규제, 투기 수요 유입, 유가 급등 등 비용 상승, 달러 약세 등이 국제 곡물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태지역 인구의 40%는 건강한 식단을 꾸릴 여력이 없으며, 해당 식단의 비용은 1인당 하루 미화 4달러에 그치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미국에 심각한 가뭄이 있었다. 그 결과 2012년 미국 옥수수 생산량은 2년에 거쳐 13.4%, 대두 생산량은 8.9% 감소했다. 기후조건 악화와 2010년 러시아의 곡물 수출 금지로 농산물 가격 변동성이 심화되기도 했다. 1973~1974년 이후 세계가 또 다른 식량 위기를 경험하는 데 35년이 걸렸지만, 현재의 비상 사태는 2008~2012년 재난 이후 10년도 채 되지 않아 발생했다. 위기 사이클의 단축이 우려스럽다.

# 국가들이 반복되는 식량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는지 제언 부탁드린다.

분쟁과 현재 전쟁은 기아의 가장 큰 단일 동인으로 남아 있으며 농업은 지속적인 평화와 안보의 열쇠 중 하나이다. 세계는 인도주의적 개발과 평화적 연결을 강화하고 분쟁과 기후 변화를 포함한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을 밝혀야 한다. 지금은 행동할 때이다. 향후 2년 내로 행동하지 않으면 10억 명이 굶주림 속에 살게 될 것이다. FAO는 글로벌 농식품 무역 시스템을 개방, 농식품 수출이 제한되거나 과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회원국들에게 글로벌 공조를 위한 4가지 주요 대응방안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식품 가격 상승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는 국가에 대한 더 많은 투자, 식품 손실과 폐기물 감소, 천연 자원, 특히 물과 비료의 더 효율적인 사용, 농업의 시장 실패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기술과 사회 혁신 등이 그것이다.

# FAO 차원에서 역내 식량 위기 극복을 위해 어떤 대책을 추진하고 있나.

우크라이나 밀 수입국의 55%는 인구가 많은 아시아 국가였다. 러시아는 이 지역 비료의 상당 부분을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는 식량 안보와 현재 진행 중인 미래의 농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장기화 되면서 계절근로자의 이동제한에 따른 노동력 부족으로 파종과 수확 중단 등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내수 가격 상승을 우려해 수출 제한 조치를 취했다. 식량 불안정에 대한 분쟁의 영향을 방지하려면 회원국의 지속 가능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FAO는 역내 회원국이 관련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혁신적인 금융 도구와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고 있다. 또 FAO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긴급 구호를 제공하고 있다. 사례로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밀 재배 패키지 300만 명분을 지원했다. 패키지 가격은 미화 160달러에 불과했지만, 1년 내내 7인 가족의 안정적인 곡물 요구 사항을 충족했다. 현지 시장에서는 이 같은 양의 식량에 대한 비용이 6배 더 비싸다. 우리는 축산농가가 우유 생산량을 증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는 모든 아프가니스탄 어린이가 최소 5개월 동안 하루에 한 잔의 우유를 섭취할 수 있는 수준에 해당하는 양이다. 우리는 회원국들이 혁신과 신기술, 특히 물 관리, 관개 시스템, 고품질 농업 투입, 보다 투명한 시장 정보 시스템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식량 공급망의 기본을 강화하면 해당 지역의 식량 공급망 취약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FAO는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핵심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핸드-인-핸드 이니셔티브(Hand-in-Hand Initiative)를 통해 2030년까지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데이터, 기술 및 혁신을 더욱 활용하려는 정책 입안자를 지원한다. 또한 FAO의 1000 디지털 빌리지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이 지역의 디지털 빌리지를 발굴하고, 신규 구축을 지원한다. 이와 함께 원 컨트리 원 프라이어티 프로덕트(One Country One Priority Product)프로그램을 통해 생산성, 마케팅과 같은 식량 가치 사슬을 업그레이드한다.아울러 기후 변화 완화와 적응에 대한 조언, 전염병 및 기후 위기로 인한 생명과 생계의 피해 극복 지원을 포함해 국가 주도의 군서도서 개발도상국(SIDS: Small Island Developing States) 솔루션을 육성하고 촉진한다.

  # FAO의 아태지역에서의 역할은.

FAO아시아태평양지역사무소(이하 아태사무소)는 46개의 역내 회원국을 지원하고 있다. 회원국들이 기아와 빈곤의 심화를 방지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기술과 정책 조언을 제공한다. 동시에 미래의 충격에 더 잘 견디도록 식품 시스템을 변형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이것이 미래 10년과 그 이후를 위한 FAO의 사명이다. 우리는 회원국들이 더 나은 생산, 더 나은 영양,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효율적이고 포용, 탄력적이며 지속 가능한 농식품 시스템을 만들고, 누구도 뒤처지지 않도록 농식품 시스템을 혁신하도록 계속 지원할 것이다. 아태사무소는 선진국, 개발도상국, 저개발국가와 아태지역 군서도서개발국가(Small Island Developing States, SIDS), 그리고 역내 45억 명의 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 관련 500개 이상의 기술 협력과 개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 김종진 FAO 아태사무소장은

김종진 소장은 고려대 경제학과와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MBA)를 졸업했다. 1982년 농수산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농림수산식품부 국제협력국장, 통상정책관(차관보급) 등 국제농업통상 업무를 주로 담당했으며, 퇴임 이후 지난 2013년 한국인 최초로 FAO 본부 고위직인 남남협력·자원동원국장(D2)으로 부임했다. 이후 지난 2020년 7월 UN 식량·농업 분야(FAO, WFP, IFAD) 국제기구 진출 한국인 중 가장 높은 직위인 FAO아태사무소장으로 임명됐다. 아태사무소장은 사무차장보(ADG)급으로 사무총장(DG)·사무차장(DDG)과 함께 관할 지역과 관련된 FAO 사업을 기획·조정하는 임무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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