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전 절반 밖에 못 건져…생산비도 안나와 빚더미에 앉은 농업인 ‘울상’

폭우·일조량 부족·연작피해까지
평균 출하가, 7000~8000원 선

[농수축산신문=박현렬 기자]

농업인과 작업 인부들이 포전에서 배추를 조금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정식 50일이 갓 넘은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농업인과 작업 인부들이 포전에서 배추를 조금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정식 50일이 갓 넘은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이달까지 지속된 강우로 일부 지역에서 주택·시설물 등의 복구작업이 한창이지만 지난달 25~26일 고랭지 배추 주산지인 태백, 정선, 강릉 일대는 바이러스·연작피해로 복구조차 할 수 없는 배추를 조금이라도 건지기 위한 작업이 이어졌다.

고랭지 배추는 일반적으로 정식 후 60~65일 사이에 수확·출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올해의 경우 폭우 피해와 일조량 부족에 따른 바이러스 확산, 연작피해까지 겹치면서 정식 50일이 갓 넘은 배추를 출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성상 태성화물(한뜰영농조합법인 대표) 소장은 “올해 태백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19만8000㎡(6만 평)의 배추를 심었는데 이 중 13만2000㎡(4만 평)의 포전에서 5톤 차량 4대밖에 수확하지 못했다”며 “농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피해를 덜 본 농가는 포전의 50%, 피해를 크게 본 농가는 10~20% 밖에 건지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노 소장은 “평년의 경우 990(300평)~1155㎡(350평)의 포전에서 5톤 차량 한 대에 적재할 수 있는 배추가 수확됐는데 올해는 1980(600평)~2310㎡(700평)의 밭을 수확해야 차량 한 대가 겨우 될까 말까 하다”며 “도·소매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장바구니 물가 비상이라는 보도가 연일 나오지만 농가들은 최근 3년 동안 배추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농업인의 인건비를 제외하고 배추의 10kg 망당 도매가격이 9000원을 넘어야 손실이 없지만 현재 포전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특·상품의 가격만 1만 원대 중후반을 형성할 뿐 전체 배추 평균 출하가격은 7000~8000원에 불과하다는 게 재배 농업인들의 전언이다.

고랭지로 일컫는 해발 800m 지역도 지난달 중순까지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등 매년 고랭지 배추 생육기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지면서 바이러스 등의 병 발생이 심화되고 있다.

전상민 태백농협 농산물유통가공사업소 유통팀장은 “올해의 경우 정식 이후 40일이 갓 지난 배추의 포전에서 대부분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제때 수확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비로 인한 무름병 피해는 거의 없고 대부분 배추 끝잎이 마르는 잎마름병과 배추 전체가 노랗게 변하는 바이러스”라고 설명했다.

실제 태백, 정선, 강릉 대기리 등의 포전에서 바이러스 피해를 입어 노랗게 변색되는 배추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매년 연작피해에 바이러스 피해까지 겹치면서 정선 임계와 귀네미 지역은 배추 주산지라는 명성과 다르게 사과 과수원이 크게 늘었으며 감자나 양상추로 작목 전환도 이뤄졌다.

오현석 대아청과 영업1팀 부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정선지역에서 배추가 많이 재배됐는데 기상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에 재배여건까지 나빠지면서 재배면적이 큰 폭으로 줄었다”며 “고랭지 지역 대부분에서 정상적으로 배추를 수확해야 하는 시기보다 조기작업이 이뤄짐에 따라 추석 이후에 출하될 물량이 추석 이전 대부분 수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발 1000m 이상의 완전 고랭지지역에 속하는 강릉 안반데기과 인근 대기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30년 이상 배추를 재배한 김시갑 씨는 “병해충이 없다는 전제하에 포전에서의 감모율이 20% 정도인데 3년 전부터 이상기후에 따른 집중 강우, 병충해, 연작피해 등이 심화되면서 40% 이상이 감모된다”며 “정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물가안정에만 신경 쓸 뿐 산지에서 생산비를 건지지 못해 빚더미에 허덕이는 농업인들은 안중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소비촉진을 이유로 농할쿠폰 예산을 늘렸지만 다음작기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막막한 농업인들을 위한 지원은 전무하다”며 “새정부가 출범했지만 농업·농업인 홀대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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