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용 국립수산과학원 연근해자원과 연구관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김희용 연구관
김희용 연구관

우리나라 바다에 멸치가 무려 1600만 톤이나 되고 더구나 잠재생산력은 1억톤이나 된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다. 멸치는 매년 약 20만 톤 정도를 어획하고 있으니 이것이 맞다면 연간어획량의 80배에 달하는 양이 있는 셈이다. 멸치가 우리 바다에서 사는 고등어, 살오징어, 갈치 등 주요 상업어종 중 자원량이 가장 많음에는 틀림이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어업생산량이 94만톤 이었으니 그 양이 상당하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아무런 제한 없이 마구 잡아도 멸치는 사라지지 않을까?

바다에서 서식하는 약 2만 여종의 물고기 중, 가장 많은 식구를 거느린 종이며, 너도 생선이냐 할 정도로 작고 힘없는 어종이 멸치다. 멸치는 작고 힘도 없으면서 성질까지 급하다. 그래서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어버린다(멸, 滅)’해서 멸치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멸치는 인간이 이용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어류로 해양생태계에서 상위 영양단계 어류의 주요 먹이가 되어 수산자원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멸치를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 수산자원을 관리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멸치 자원량을 기반으로 수산자원 관리정책을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멸치의 산란기 보호를 위한 금어기 외에 별다른 자원관리정책이 없었으나 올해부터 TAC(총허용어획량)를 기반으로 일부 업종에서 시범적으로 자원관리가 시작됐다.

우리나라 멸치 자원량이 1600만 톤이고 잠재생산량이 1억 톤이라면, 너무도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바닷속 생물의 자원량을 그리 간단히 판단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산출된 자원량을 기준으로 어획노력량(어업 규모)을 설정하게 되므로 자칫 과도한 계산을 하게 되는 경우 해당 어류자원은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멸치자원을 태평양 연안까지 우리보다 넓은 수역에서 이용하는 일본이 산출한 멸치 자원량이 42만7000톤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멸치 자원량이 1600만 톤이라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상 생물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생물정보나 생태정보를 활용한 자원량 추정은 시도하지 않는 것이 과학자의 기본 상식이다.

이러한 엄청난 양의 멸치 자원량은 남해에서 조사된 멸치알의 수를 이용해 추정됐다. 간단히 설명하면 멸치알의 수를 멸치 한 마리가 낳을 수 있는 알의 수로 나누면 멸치 암컷의 수가 되고 여기에 두 배를 곱해주면 멸치 암수 어미의 수를 계산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멸치 서식환경이 제일 좋은 남해에서 조사된 멸치알 분포량의 평균값을 우리나라 전 해역에 적용하여 계산한 1600만 톤의 멸치 자원량은 멸치가 일정한 양으로 모든 해역에 균일하게 산란한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가지고 계산한 결과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식물플랑크톤량이 변하지 않아 어류 자원량도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동해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장기적인 수온 변화로 인해 식물플랑크톤의 기초생산력이 38%나 떨어졌고 해양에서 수산생물의 먹이원으로 이용되는 20㎛ 이상의 식물플랑크톤도 감소해(2㎛ 이하 극미소 플랑크톤의 점유율이 40~60% 수준) 에너지 효율도 크게 떨어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그러므로 식물플랑크톤량 만을 근거로 추정하더라도 멸치 자원량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보의 차이로 인해 실제 100만 톤인 자원량을 400만 톤으로 잘못 추정했다고 하자. 자원관리를 위해 이 중 40%를 어획한다고 하면 400만 톤으로 추정된 경우는 어업생산량이 160만 톤이 되므로 실제 자원량 100만 톤을 다 잡아도 모자라게 된다. 이 경우 해당 자원은 전멸(멸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산자원량의 추정은 신중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바닷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모를 수도 있는 불확실성이 많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인구, 경제, 기상 등 다양한 분야의 예측 결과를 기반으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 하지만 예측에는 늘 불확실성이 있다. 더구나 미지의 바닷속 생물의 양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앞서 나열한 예들보다 훨씬 더 어렵다. 여기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바로 수산자원량을 추정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수산학자들이 인간이 확보할 수 있는 제한된 생물, 환경정보를 가지고 최대한 합리적인 수산자원량을 계산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개발해 왔다. 이제는 부족한 정보를 가설로 어림잡아 바닷속 생물량을 계산하려는 오만을 버리고 발달한 기술과 장비를 이용해 더 많은 생물학적 정보를 확보, 수산자원량을 현실적으로 계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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