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쌀시장 안정 적극 대응 – 재정부담 증가·재배면적 증가 우려 제기

초과 생산량 3% 이상
평년 가격 대비 5% 이상 하락 시
시장격리 의무화, 시장 안정 도모

전략작물직불제 신규 도입
가루쌀·밀·콩·조사료 재배 확대하고
쌀 수급균형·식량안보 강화를

초과 생산량·가격하락 등
시장격리 요건 충족되더라도

무작정 사주는 방식 지양
정부 매입량 한도 정해두는 등

제한적 정책이 되도록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 보완 작업도 필요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농업 현장에서는 ‘5만 원대가 무너진 쌀값(20kg 정곡)이 조만간 4만 원대 아래로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소비지에서는 10kg 경기미가 2만3000원대에 할인판매 상품으로 매대에 오르고 있다.

세 차례에 걸친 정부의 시장격리에도 불구하고 연일 쌀값이 곤두박질치면서 대책 마련에 대한 농업인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쌀은 지난해 통계청 농림어업조사 기준 전체 103만1210농가 가운데 38만9572농가가 재배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품목으로 ‘쌀값은 농업인의 월급’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우리 농업의 근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쌀이 유래없는 가격폭락으로 농가가 논을 갈아엎는 지경에 이르며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위기에 직면한 쌀산업을 전체적으로 진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쌀 시장격리 의무화를 위해 적정 생산유도, 통계 고도화 등이 선결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쌀 시장격리 의무화를 위해 적정 생산유도, 통계 고도화 등이 선결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① 쌀 ‘시장격리 의무화’ 쟁점과 과제는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0월부터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수 차례 발의한데 이어 최근에는 당론으로 채택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농림법안심사소위에서 단독 통과시켰다. 소위 ‘쌀값 정상화법’이라 불리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미곡의 시장격리 요건을 시행령·고시에서 법률로 상향하고 정부 매입을 의무화 하고 있다. 또한 벼와 타작물에 대한 재배면적 관리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와 여당이 45만 톤 규모의 쌀 시장격리를 발표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장기적인 쌀 산업 관리를 위해 선제적인 생산조정과 사후적인 시장격리제도를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제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날 열린 국회 농해수위 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처리되지 못하고 안건조정위원회로 넘어갔다.

# 왜 쌀 시장격리 의무화를 추진하게 됐나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정곡 20kg 기준 산지 쌀값은 4만725원으로 지난해 수확기(10~12월) 전국 평균 5만3535원 대비 23.9% 하락했다. 45년만의 최대 하락폭을 연일 경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가격 하락의 원인으로 쌀 가격안정을 위한 정부 매입(시장격리) 등 양곡 수급 관리 조치가 담긴 양곡관리법이 적기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점이 지목됐다. 지난해 약 10%의 초과생산이 예상돼 농업인단체 등에서 조속한 쌀 시장격리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시장격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특히 양곡관리법에서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정부가 매입‘해야 한다’가 아닌 ‘할 수 있다’여서 올해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초과 생산량 3% 이상, 미곡의 단경기 또는 수확기 가격이 평년 가격 대비 5% 이상 하락 시 정부가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고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 쌀 시장격리 의무화 신중론이 나오는 이유

쌀 시장격리 의무화는 쌀값 안정을 통해 벼 재배농가의 쌀값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쌀 산업의 안정적 기반을 확보한다는 취지지만 이에 소요될 예산에 따른 정부의 재정 부담 증가와 벼 재배농가수·재배면적 증가 등에 따른 정책 효과 반감 등 우려가 있어 신중한 추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올해 37만 톤의 쌀 시장격리 비용은 7883억 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판매손실과 관리·가공비용까지 감안하면 총 소요예산은 약 8489억 원에 달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게다가 지난 25일 당정협의회를 거쳐 발표된 수확기 대책 45만 톤 추가 시장격리를 위한 예산은 대략 9000억~1조 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비용은 쌀값이 오르고, 시장격리 물량이 커지면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쌀값을 지금 보다 높은 수준에서 안정시키기 위해 시장격리를 의무화할 경우 타작물에 비해 안정적으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벼에 대한 농가의 재배의향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 벼 재배농가수와 재배면적이 함께 늘어날 수 있다.

이에 따라 쌀 소비확대 등 수요량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이 수반되지 않은 가운데 벼 재배의향이 높아질 경우 공급과잉이 반복될 수 있으며 늘어난 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미래농업에 투자할 예산이 쌀값 안정에 집중돼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쌀 시장격리 의무화는 논 타작물 재배지원이나 전략작물 직불 등 적정 재배면적 관리를 위한 정책과 상충돼 정책 효과를 낮출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논에 벼가 아닌 밀이나 콩 등 타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권장하면서 한편으로 논에 벼를 재배하는 농가를 위한 지원을 확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박정하 국민의힘 대변인은 지난 25일 브리핑을 통해 “남는 쌀 의무매입을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은 쌀 공급과잉을 심화해 정부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킴으로써 미래농업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며 “격리 의무화 보다는 전략작물직불제 신규 도입으로 가루쌀, 밀, 콩, 조사료 등의 재배를 확대하고 쌀 수급균형과 식량안보 강화를 동시에 이뤄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선결과제는

이러한 우려로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기 위해서는 적정 생산유도와 이를 위한 생산·수요 통계의 고도화 등이 선결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쌀은 우리의 주식이자 벼 재배농가가 전체 농가의 37.78%에 달할 정도로 우리 농업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다. 특히 쌀 시장격리 등 사후조치 보다는 논 타작물재배지원과 같은 사전적 대응이 보다 경제적이기 때문에 연간 수요량, 세계식량농업기구(FAO) 권고 비축량 등을 감안한 적정 생산량을 유지·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농업계뿐만 아니라 여·야 모두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쌀 생산조정제가 실시됐던 2018~2020년에 생산된 쌀에 대한 수급조절에 소요된 예산은 약 2065억 원이다. 1년에 1000억 원도 채 들지 않았던 셈이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쌀 시장격리와 같은 사후 조치는 재배면적 조절과 같은 사전 대응보다 많은 예산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농가의 피해도 크다”며 “생산량을 줄이는 것과 수요처를 개발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생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학구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수확기를 앞두고 정부가 쌀 시장격리 계획을 밝힌 점에 대해서는 환영하지만 근본적인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적정 생산 관리와 쌀 소비 활성화 등을 위한 고민과 충분한 예산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재배면적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 지난해산 쌀값이 폭락해 지금에 이르는 과정에서 생산·수요 통계의 부정확성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왔던 만큼 이에 대한 고도화는 쌀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중장기적 정책 마련에 필수적인 과제로 꼽힌다.

김연화 소비자공익네트워크 회장은 “해마다 엉터리 통계로 농업계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불신이 커지고 있다”며 “정확한 통계를 근거로 쌀 수급을 조절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농업이 식량안보의 근간으로서 제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더라도 정부에서 무작정 다 사주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초과 생산량과 가격 하락을 통해 시장격리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정부 매입량 한도를 정해두는 등 제한적인 정책이 되도록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서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쌀 시장격리 의무화에 앞서 정부의 쌀값 안정 의지가 무엇보다 강조되고 있다. 정부에서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법이 마련되더라도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은만 한국쌀전업농중앙회장은 “양곡관리법에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느냐, 마느냐 보다는 정부가 얼마나 쌀생산 농가를 위하고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의지가 있다면 예산을 만들고 제도를 보완해서라도 가능한 일도 의지가 없다면 제도가 마련됐더라도 핑계를 대며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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