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조정의 주체 정부가 아닌 농업인이 돼야…농가 경영안정 ‘우선’

논에 타작물 재배 위해
기반정비·농기계 교체 필요
보조금 통해 평균 소득의
120% 이상 유지하도록 도와야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쌀값 폭락 사태의 재발 방지와 쌀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적정 생산량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쌀값 폭락 사태를 타개하겠다며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입법을 추진 중인 ‘쌀값 정상화법’이라 불리는 ‘양곡관리법’ 일부개정안에 대해서도 정부와 국민의힘이 쌀 시장격리 의무화에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신중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적정 생산을 위한 재배면적 관리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쌀값 폭락의 주된 원인이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에 있는 만큼 줄어들고 있는 수요량, 세계식량농업기구(FAO) 권고 비축량 등을 감안한 생산량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생산조정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벼 재배면적은 72만7158ha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73만2477ha대비 5319ha(0.7%) 감소했지만 지난 4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쌀 적정생산량을 364만7000톤으로 설정해 평년단수를 적용한 적정 벼 재배면적 70만ha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이러한 결과는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풀이된다.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은 쌀 공급과잉 문제 해결을 위해 논에 벼 대신 콩 등 다른 작물을 재배하거나 휴경을 하는 경우 정부가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정책사업으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됐다. 그러다 사업이 종료된 지난해 벼 재배면적은 전년 대비 6045ha(0.8%)가 증가하면서 20년만에 처음으로 늘었다.

이에 적정 생산을 위해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과 같은 생산조정 지원제도의 필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신정훈 의원(더불어민주, 나주·화순)은 “쌀값 폭락이 가속화된 요인 중 하나는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 중단”이라며 “선제적 생산조정을 통한 쌀값 안정과 재정 절감의 선순환 구조 전환을 목표로 진행된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은 3년간 예산 집행액이 2065억 원에 불과했지만 해당 기간 약 7만7000ha 쌀 생산조정으로 40만 톤을 사전에 시장에서 격리하는 효과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이 남긴 교훈

농업계 전문가들은 과거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에 대해 실패한 사업으로 평가한다. 사업 추진 당시 농가의 참여가 저조해 목표에 크게 미치지 못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실제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은 2018년 5만ha 쌀 재배면적 감축이 목표였지만 2만6447ha(52.8%)를 줄이는데 그쳤다. 2019년에도 5만5000ha가 목표였지만 실제 2만8610ha(52%)를 줄이는데 만족해야 했다. 2020년에는 2만1469ha를 줄여 목표 2만ha를 초과하는 실적을 올렸지만 목표 자체가 낮아 성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조차도 사업이 종료된 이듬해인 지난해에 다시 벼 재배면적은 증가해 올해 초 부랴부랴 농업인단체, 농협, 지자체 등에 벼 재배면적 감축 노력을 요청했다.

하지만 1ha당 255만~525만 원의 보조금이 지급됐던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조차도 농가의 참여 부진으로 실패했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 보조금도 없이 올해 3만ha 이상의 벼 재배면적을 감축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 관건은 농가 설득

하지만 이러한 과거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 결과를 통해 농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추진될 생산조정의 방향성은 확인할 수 있다고 전한다.

우선 생산조정의 주체가 정부가 아닌 농업인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만으로는 농가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정책의 연속성과 충분한 농가소득 보전도 주요한 성패 요인으로 지목된다.

농가에서 논에 벼가 아닌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기반 정비, 새 작물 재배에 따른 시행착오는 물론 필요한 경우 관련 농기계 등의 교체가 요구되는 등 많은 시간적, 재정적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기껏 작목 전환을 위한 투자와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원책이 사라진다면 막대한 손실은 물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까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농가의 고령화도 다른 품목으로의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 벼농사는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 강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농업총조사에 따르면 논벼 재배농가 중 70세 이상의 경영주 비율은 46.9%로 타작목에 비해 4.8~25.3%포인트나 높게 나타났다.

김한호 서울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쌀은 노동요구량이 다른 주요 품목에 비해 낮아 고령 노동에 가장 적합한 품목이 됐다”며 “노동·기술구조에서 비록 소득이 높다 하더라도 쌀이 아닌 다른 품목으로의 대체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보조금 규모가 농가의 소득을 충분히 보전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으로 1ha당 (논콩)보조금이 2018년 280만 원에서 2019년 325만 원으로 인상되자 논타작물재배면적은 8.2%가량 늘었다가 보조금이 축소된 2020년 전년 대비 25%나 줄었다.

김태연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논에 벼가 아닌 타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보조금 등을 통해 농가가 타작물을 재배함으로써 평균 소득의 120% 이상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다만 타작물 재배 시 작목 선택이나 휴경 등에 대해서는 농가가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 충분한 예산 확보·통계 고도화 과제

정부와 국민의힘은 전략작물직불 도입 등을 통해 내년부터 쌀 생산조정 지원을 다시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내년도 정부 예산에는 관련 예산으로 720억 원만이 편성돼 있어 실효성에 의구심이 들고 있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에 전략작물직불 예산 720억 원이 편성됐지만 이 예산으로 순수하게 줄일 수 있는 면적은 1만ha가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며 “해마다 차이는 있지만 쌀 소비량이 2%가량 감소하고 있고 올해 재배면적 감소 폭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유일한 정책 수단인 생산조정 관련 예산을 더욱 확대 해야 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예산뿐만 아니라 통계의 고도화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확한 근거와 목표를 가지고 벼 재배면적을 줄여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산 쌀값 폭락과 관련해 생산·수요 통계 오류가 세 차례에 걸친 쌀 시장격리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안정화시키지 못한 요인 중 하나로 해석되며 통계 개선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

민주연구원은 최근 정책 브리핑을 통해 “현재 쌀 수요량은 인구변화에 통계청이 조사한 1인당 쌀 소비량을 곱한 단순산술 방식으로 추산되고 있어 쌀 수요량과 오차가 상당히 발생한다”며 “양곡소비량 조사(통계청), 소비패널(농촌진흥청), 유통정보(산지 판매량, POS데이터), 소비동향(눈) 등 종합적인 자료수집으로 쌀 소비·유통 정보시스템의 고도화와 빅데이터 기반 쌀 수요예측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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