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훈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근해어업연구실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ESG 경영확산과 업사이클링 혁신기술로 인해 페어구, 제품소재로 재탄생

-기업-어촌 잇는 플랫폼 필요

오래 전부터 바다에 유실되거나 버려진 폐어구는 문제가 되어 왔다. 이와 함께 해상에 부유중이거나 침적된 폐어구에 의해 수산동물이 걸려 죽게 되는 소위 ‘유령어업(Ghost Fishing)’의 문제를 국제사회가 제기하면서 폐어구의 문제는 전 세계적 이슈로 확산이 됐다. 
 

해양수산부는 2015년 국내 연근해에서 폐어구로 인한 유령어업으로 연근해어업 생산량이 연간 10% 가량, 그 금액은 3787억 원 수준으로 추정한 바 있다. 2015년 당시 연근해어업 생산량이 약 106만 톤으로 국민의 밥상에 올라왔어야 할 약 10만6000톤의 수산물이 폐어구에 의한 유령어업으로 소실된 것이다.
 

폐어구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폐어구는 선박의 프로펠러 등에 얽혀 부유물 감김사고를 일으켜 어업인의 안전에도 영향을 주고 있으며 바다에서 수거·회수된 폐어구는 어촌마을의 경관을 해치고 악취를 풍겨 어촌 주민들의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다
 

폐어구에 의한 연근해어업 생산량 손실, 안전사고 증가, 해양·어촌 환경 훼손 등의 문제의식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해양환경오염이 어촌 지역주민과 어업인들의 삶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면서 정부·지자체와 공공기관 등이 추진해 온 폐어구 수거 사업에 모두가 동참하도록 견인해 온 것이다. 
 

지금까지 폐어구 수거를 위한 상당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그 노력의 방향이 수거에 치중, 재활용 등을 통해 육상에 쌓여가는 폐어구 총량 자체를 저감하기 위한 관리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다는 점이다. 해상에서 수거된 폐어구는 정부·지자체의 행정절차나 예산문제 등으로 제때 처리되지 못해 결국 관광수요가 높은 어촌지역과 우리나라 주요 항포구에 점차 쌓여 왔고 이에 따라 악취 등으로 인한 지역 민원이 점차 증가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어촌지역 주민과 어업인들이 점차 늘어나는 폐어구를 처리하지 못해 안달인데 일부 기업들은 부족한 폐어구를 찾고자 수소문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확산과 해양폐기물에 대한 업사이클링(upcycling) 혁신기술이 나타나면서 기업들은 자사의 제품 소재에 폐어구를 재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국내에서 잘 알려진 아디다스(Adidas)와 나이키(Nike) 등의 글로벌 기업에게 필요한 소재를 제공해 온 우리나라 협력업체를 들 수 있다. ESG 경영이 부상하면서 이들 글로벌 기업은 우리나라 협력업체에게 2025년까지 신발과 의류를 비롯한 자사의 주요 스포츠용품 생산을 위해 폐어구를 재활용한 소재를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지금까지 벤더로서의 역할을 해 온 덕일섬유, 태광실업, 창신아이엔씨 등의 업체들은 글로벌 기업의 요구사항에 따라 재활용 원료인 폐어구를 확보하는 것이 주요 사안이 된 것이다. 특히 덕일섬유의 경우 아이다스가 폐어구를 재활용한 소재를 요구함에 따라 이들 업체는 국내의 폐어구 관련 정보를 찾을 수도 없거니와 안정적인 폐어구 물량을 확보할 수가 없어 한때 대만 등에서 폐어구를 수입할 생각까지 한 적도 있었다니 기가 막히는 상황이다. 
 

폐어구 수거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처리 또한 육상에서 쌓여가는 폐어구 총량을 줄이기 위해 중요하다. 과거 폐어구는 소각이나 매립을 통해 처리됐지만 대기오염과 토양오염 등의 이유로 현재로서는 최고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보다 나은 방법으로 폐어구 총량을 저감시켜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플랫폼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플랫폼(platform)의 사전적 의미는 원래 승객이 기차나 지하철을 타는 곳으로 이는 한 집단을 다른 집단 또는 서비스와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의미한다. 플랫폼의 의미가 폐어구에 적용된다면 서로 다른 두 집단, 이를테면 재활용을 위해 폐어구가 필요한 집단과 폐어구를 내어 줄 수 있는 집단을 플랫폼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들이 상호작용하며 폐어구가 그 가치를 창출하는 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폐어구 정보망과 전처리 기반 시설 구축 등을 바탕으로 폐어구를 찾고자 하는 기업과 폐어구를 제발 가져가 달라고 요구하는 어촌 지역주민과 어업인을 서로 연결시켜 줄 수만 있다면 폐어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의미 있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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