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발에 오줌 누기식 복구'는 안될 일…시설현대화사업 추진 시급

[농수축산신문=박현렬 기자]

화재 전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
화재 전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

세 번의 연구용역 이후 확장 재건축에서 다시금 이전으로 방향을 바꿨던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지난달 25일 화재가 발생해 중도매인 점포 69개가 전소됐다.

화재로 중도매인 점포는 전소됐지만 다행스레 농산물 성출하기가 아니고 임시경매장과 몽골텐트 등의 임시시설을 가동하고 있어 현재까지는 출하자와 중도매인들의 피해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복구공사가 늦어져 내년 설 성수기까지 복구가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반입량 증가에 따른 문제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우려된다. 

1988년 개장된 대구도매시장은 농산물 반입량 증가에 따른 공간협소, 노후화된 건물, 불합리한 교통체계 등으로 2005년부터 시설현대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시설현대화사업을 위한 연구용역이 추진됐지만 시기마다 유통종사자, 해당 지역구 정치인, 지역주민 간의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시설현대화 방향성이 결정되지 않았다.

이후 대구시는 2019년 12월 대구도매시장이 농림축산식품부의 공영도매시장 시설현대화 공모에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국비 30% 지원을 바탕으로 확장 재건축 현대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지방행정연구원의 사업 타당성 조사 결과를 반영해 내년도 완공을 목표로 총 1075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겠다고 설명했다.

현 부지 내에서 안전에 문제가 없는 시설물은 건드리지 않고 불합리한 시설 재배치, 부족한 시설 확충 등이 대구시가 내놓은 시설현대화사업의 방향이었다.

인근 부지 1만7304㎡ 확보, 1만6529㎡의 지하 공간 개발 등의 계획도 수립됐었다.

유통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사업설명회까지 진행하며 시설현대화사업 추진에 급물살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홍준표 대구시장이 새로이 시장에 당선되면서 공약사항으로 대구도매시장 이전을 내세워 또 한 번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결국 지역구 의원들이 이전 반대 의사를 나타내며 대구도매시장의 시설현대화사업 추진은 또 차일피일 미뤄지게 됐다. 대구시의회는 대구도매시장 이전 연구용역 예산 2억 원을 삭감했다.

이처럼 시설현대화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대구도매시장 유통인들은 이번 화재가 예견된 재앙이었다고 피력했다.

박규홍 한국농산물중도매인조합연합회 대구시지회장은 “2013년에도 화재가 발생해 중도매인 점포가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는데 이번에는 더 큰 화재로 인해 중도매인들의 생업에 문제가 발생했다”며 “시설현대화사업 방향성을 정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룬 개설자로 인해 시장 종사자뿐만 아니라 출하자들까지 피해를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구도매시장에는 현재 임시 경매장이 마련되고 영업장소를 잃은 중도매인들을 위한 임시시설이 갖춰졌지만 겨울까지 점포 복구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한 중도매인은 “화재 발생 이전에는 대구도매시장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불이 나니까 이제 복구를 얘기하고 자금 지원 등을 발표하고 있다”며 “전소된 점포만 복구하는 ‘언발에 오줌 누기’식의 공사만 진행한다면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권승구 동국대 식품자원관리학과 교수도 “개장 30년을 훨씬 넘어 노후화된 시설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음에도 관리조직들이 신경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며 “도매시장에서 위생·안전에 대한 부분을 다시금 철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이권 다툼 때문에 농업인과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더 이상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임시경매장, 몽골텐트 등의 임시시설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설현대화사업을 하루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노후화되고 가설 건축물이 대부분인 대구도매시장의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됐음에도 관리에 미흡했다”며 “대구도매시장과 대구시의 발전을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설현대화사업이 속히 추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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