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원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밀과 이모작에 유리한 가루쌀 품종

-생산·소비 확대는 시의적절

-농 형태 유지·밥쌀 과잉생산 줄이고 수입곡물 대체, 식량자급률 높일 수 있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 1인당 쌀 소비량은 56.9kg으로 불과 한 세대 만에 절반으로 줄었고 육류 소비량은 52.5kg으로 약 두 배가 늘었다. 국민 식생활 패턴의 다양화로 인한 결과로 볼 수 있지만 육류의 수입과 국내 생산에 필요한 막대한 곡물의 수입은 국가경제에 큰 부담 요인이다. 쌀의 소비와 논의 면적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지만 쌀 생산량은 비례하여 줄지 않아 고물가 시대에도 쌀값은 오히려 떨어졌다. 농민의 시름과 정책의 고민이 깊어진 이유다. 
 

그러나 쌀은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 먹거리의 근간이고 낮은 식량자급률을 그나마 지탱하고 있는 핵심 작물이다. 김치와 장류 등 우리나라 한식문화의 중심에는 쌀이 있고, 우리의 전통과 생활문화에서 뗄 수 없는 문화유산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나라 농업분야 생산액 1위, 농업소득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불안정한 곡물 시장에도 다양한 품종개발과 재배기술로 생산성을 유지하며 대처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식량작물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벼 육종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통일벼 개발로 짧은 기간에 주곡 자급을 이룬 것을 필두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춘 최고품질 쌀, 다양한 용도의 특수미, 사료용 벼,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가루쌀 등 지역별 환경에 맞춘 다양한 용도의 400여 품종을 개발했다. 국제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성과이다. 최근 개발한 벼 품종들은 웬만한 바람에도 쓰러짐이 적고, 병해충에도 강한 덕에 풍년을 이룬다. 이로 인해 쌀의 시장격리와 수매물량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진 역설적인 측면도 있다. 
 

최근 아프리카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현지에서 개발, 보급한 통일벼 계통의 다수확 품종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아프리카벼연구소(AfricaRice), 한-아프리카농식품기술협력협의체(KAFACI) 19개 회원국과 협력하여 2025년까지 19개국에 55개 이상의 품종을 개발해 벼 생산성을 25% 이상 높인다는 목표로 아프리카 벼 개발 파트너십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세네갈의 주력 벼 품종인 ‘사헬(Sehel)’보다 수량이 높고 밥맛이 좋아 현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이스리(ISRIZ-6과 7)’ 품종도 통일형 벼 품종이다. 
 

지난 10월 12일 과거 통일벼 개발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UN 산하 국제미작연구소(IRRI) 소장과 AfricaRice 대표 등 국제 벼 연구기관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했다. 농촌진흥청과 국제공동연구 기획을 위해서였다.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다는 장 발리에(Jean Balie) IRRI 소장은 그동안 대한민국이 이룬 벼 육종 성과에 놀랐다는 말을 거듭하며 글로벌 식량 이슈에 양 기관의 공동 대응을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앞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벼 육종과 기후변화에 대응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개발도상국의 벼 생산기술 훈련에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지형이 다양해 농작물의 생육과 관련한 기후대가 구분돼 있다. 국립식량과학원이 우리나라 기후 권역별로 육종부서와 출장소를 두고 품종개발 인프라로 활용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다. 과거 벼 재배에 큰 피해를 주던 도열병, 흰잎마름병, 줄무늬잎마름병, 쓰러짐 피해 등이 이제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재배기술을 체계적으로 확립하고 품종개발 초기부터 저항성 유전자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이 주도했던 국제 벼유전체사업(Rice Genome Project)과 바이오그린21사업 등을 통해 축적한 유전체 정보를 실제 벼 육종에 잘 활용한 결과이다.   
 

최근 기후변화, 불안한 국제정세 등으로 식량주권이나 식량안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식량의 자급이나 수급 방식을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식량주권은 국방이나 외교 못지않게 국가 존립과 경쟁력의 필수요건이 되었다. 우리나라 식량주권 확보의 출발점은 당연히 쌀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경지면적과 논 면적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벼 재배 면적도 올해 72.7만ha로 10년 사이 14%가 넘게 감소했다. 쌀의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논의 면적을 줄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제한된 경지면적에서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밀과 이모작에 유리한 가루쌀 품종 ‘바로미2’의 생산과 소비확대는 여러가지 면에서 시의적절한 정책이다. 논 콩 생산을 장려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쌀의 생산기반인 논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밥쌀의 과잉생산을 줄일 수 있고 수입 곡물을 대체하여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농업분야 국정감사에서 가장 큰 쟁점은 단연 쌀이었다. 양곡관리법 개정, 가루쌀 확대, 전략작물직불금 등 정책에 대한 상반된 견해로 인한 것이었지만, 결국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쌀에 대한 같은 고민이었다. 정책 관련자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화되는 식량위기 시대에 쌀은 우리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져줄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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