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조직 중심 유통혁신 사례 공유…산지 연대해 마케팅 역량 강화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농협이 마케팅 능력이 뭐가 있느냐. 한 번이라도 잘 팔아줬느냐.”

농협의 판매사업을 향한 농가의 이같은 불만에 농협은 “맡겨주기는 했느냐”며 맞받아친다.

농산물 유통의 출발점인 산지유통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산지유통 혁신의 핵심이 생산조직의 규모화와 조직화를 기반으로 한 거래 교섭력 강화라는 점에는 인식을 함께 하면서도 역량을 제대로 집중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생산자조직 중심의 산지유통 혁신의 실제 사례들을 공유하며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농협의 ‘산지유통 혁신사례 공유포럼<사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잘 팔아주면 맡기겠다 vs 맡겨야 잘 팔아줄 수 있다

‘농산물을 좋은 가격에 잘 팔아주면 믿고 맡기겠다’는 생산 농가와 ‘농협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주면 그럴 수 있다’는 농협의 대화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쉽게 정답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농협의 사례는 생산자조직 중심의 산지유통 혁신의 가능성을 전하고 있다. 최근 성황리에 거점 스마트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준공식을 거행하며 산지유통 혁신의 우수 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는 충남 금산군 만인산농협도 처음부터 거점 APC로서 전국을 호령한 것은 아니었다. 친목 도모, 농사 정보공유 수준의 느슨한 작목반을 품목별, 거래처별, 인증별로 나눠 공선회를 조직하고 품목별로 팀을 구분해 체계적으로 조직을 운용했다. 깻잎 1개 품목 45농가가 참여하는 작목반처럼 운영되던 조직은 현재 13개 품목 공선회, 23개 팀으로 확대됐으며 참여 농가수도 344농가로 늘었다. 농가조직을 개편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실질적인 교육과 회의가 진행될 수 있었고 재배계약 이행도 충실해졌다. 특히 철저한 품질관리를 하면서 유통업계에서의 신뢰도가 높아졌다.

그 결과 만인산농협은 안정적인 농산물 공급이 가능해짐은 물론 마케팅 역량까지 높아질 수 있었다. 한번 순풍을 타니 나머지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전국 지역농협들과의 연계를 통해 농가의 가격을 지지하면서도 거래처에는 거래 편의성과 안정적 공급으로 현재 100개 품목을 31개 지역농협과 협업으로 유통하고 있는 거점 APC가 됐다.

박기범 만인산농협 APC센터장은 “채소류의 경우 농산물 유통의 주도권을 산지가 아니라 벤더가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농가를 조직화하고 산지가 연대해 마케팅 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농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산지유통 혁신이 가능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 생산자 조직화와 통합마케팅 사례 다양

생산자 조직화와 통합마케팅으로 주산지로서의 이점을 제고한 사례도 있다. 충남 서산군은 전국 달래 생산량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주산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을 도매시장에 출하해 거래 교섭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에 운산농협은 공선출하회를 조직해 참여농가를 정예화하고 품목전환농과 후계농, 청년창업농 등을 지원했다. 또한 달래 영농지도사를 운영해 맞춤형 재배기술지도와 교육으로 고품질 달래 생산비중을 높였다. 특히 달래 전문 통합마케팅조직을 육성해 소포장·가공 상품화 등 산지유통의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농가소득이 높아지고 신뢰가 굳건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자체, 농업기술센터 등 기관과의 협력도 산지유통 혁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전북 무주군의 무주반딧불조합공동사업법인은 무주군과 함께 고령·영세농을 위한 농산물 순회 수집·판매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무주군의 예산지원과 사업홍보, 조공법인의 농가교육과 마케팅, 참여농협의 순회수집 등 사업 주체들의 협력으로 농가소득 증대는 물론 지역 농산물의 경쟁력까지 높이는 결과를 얻고 있다. 특히 13개 청과법인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산지유통관리자 활용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는 조공법인과 적극적인 홍보와 농가손실까지 보전하는 무주군의 협업은 농가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혁신사례 발굴·공유해 산지유통 혁신 도모

농협은 이러한 산지유통 혁신 사례를 산지유통 혁신사례 공유포럼을 통해 발굴·육성하고 있다. 최근 열린 포럼에서는 전국 산지유통관리자, 지자체 관계자, 외부 전문가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사업 모델의 유형별 선도조직을 선정하기 위해 현장 토론과 사업추진 등을 공유했다. 특히 농협은 산지유통 혁신을 위해 조합공동사업법인을 중심으로 한 연합마케팅사업 활성화를 추진, 산지조직의 규모화와 전문성을 강화해 온·오프라인 판매채널을 다변화해 농가소득을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농협은 농협 중심 유통허브 구현을 통한 농축산물 유통혁신을 실현하기 위해 산지부터 농업경제사업 전 조직과 법인이 참여하는 농협형 경제사업 벨류체인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정부정책과 연계한 산지조직 육성, 조공법인 중심 연합사업 재편 등으로 마케팅 역량을 강화해 산지유통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수출 확대까지 도모한다는 복안이다.

우성태 농협경제지주 농업경제대표이사는 “농산물 유통혁신과 한국형 농협체인본부 구축으로 ‘농업인·국민과 함께하는 100년 농협’ 구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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