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익수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농업연구관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우리 동네는 복잡한 도심을 지나서 작은 언덕 너머 40여 세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원마을이다. 마을사람들 대부분은 대도시 아파트에 살다가 이주해 잔디마당에 꽃나무, 관상수를 가꾸거나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지낸다. 한동네에 오래 살다보니 이웃의 취미도 자연스레 알게 됐다. 그 중 뒤뜰에 관상용 닭 몇 마리를 키우는 은퇴한 어르신이 있어 기술지도(?)도 할 겸해서 들러봤다.
 

대략 10㎡ 쯤 되는 면적에 나무와 철망으로 만든 울타리와 방조망이 잘 설치되어 있고, 신발소독조도 갖춰 놓았다. 키우는 닭은 토종닭, 오골계, 청계, 금계 등 종류도 다양했다. 관상용 닭답게 털 색깔이 곱고 주인의 정성 덕분인지 깃털에 윤기가 흘렀다. 방금 낳았다는 달걀 몇 개를 주셔서 날로 먹어봤다. 크기는 작았지만 확실히 비린내도 적고 고소했다. 어르신이 프리미엄 달걀이라고 자랑 할만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17.5%인 901만8000명이라고 한다. 2025년에는 20.6%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후, 2035년에는 30.1%,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2019년 기준으로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4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가 중에서 제일 높다고 한다. 은퇴한 노령층의 생계대책과 그들에게 남은 시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1964년 갑진(甲辰)생인 필자도 은퇴 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하다가 평생 닭 번식생리 연구자로 먹고 살았으니, 우리 동네 어르신처럼 뒤뜰에 토종닭을 키워서 무항생제 친환경 달걀을 생산하는 일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생산한 달걀을 내다 팔수는 없을까? 먼저 관련 법률부터 살펴봤다. 
 

‘축산법’에 따르면 닭의 경우 사육면적이 50㎡를 초과하면 가축사육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허가없이 경영을 하게 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허가를 받으려면 ‘가축전염병예방법’과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가축방역시설과 가축분뇨처리시설이 구비돼야 한다. 생산된 달걀을 판매하고자 한다면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본인의 사육시설과 500m 이상 떨어진 곳에 달걀의 선별·세척·포장·보관시설과 달걀 껍데기에 산란일자, 농장고유번호, 사육환경번호를 인쇄하는 설비도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뒤뜰 닭장에서 생산한 달걀을 내다 파는 행위는 법률 위반이다. 주택지에 가축사육업 허가를 받는 것도 토지이용계획상 불가능하다. 사육면적이 50㎡를 초과하지 않는 소규모 농장이라 할지라도 매년 반복되는 조류인플루엔자 특별방역대책기간에 관련기관으로부터 수매·도태 권고를 받기라도 하면 애지중지 키우던 닭을 처분해야 한다. 
 

은퇴 후 작은 닭장 하나 만들어 살고 싶은 소망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무렵, 청정지역으로 이름난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산란용토종닭사업’ 사업설명회가 개최됐다. 
 

영양군 관계자에 따르면 “안전하고 신뢰성 높은 토종닭 유정란을 생산·공급함으로써 신규 축산업 진입장벽을 낮추고 지역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해 지역 인구유입 유도와 농가당 평균소득 향상에 크게 기여하겠다”고 한다. 영양군이 ‘산란용토종닭사업’ 조기선점을 위해 시범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2022년 토종닭 농가소득사업 시범농장 건립사업’이 꼭 성공해서 필자와 같은 꿈을 꾸는 은퇴자들의 작은 소망도 이뤄지고 영양군 인구도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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