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자급률 45.8% 뚝…국내 식량 생산·조달 기반 확대 우선 돼야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세계 식량가격은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급격히 상승했다.

유엔(UN)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가격지수 자료에 따르면 세계식량가격은 2008~2011년 세계 식량위기 이후 점차 하락해 2015년 이후 안정세를 유지했으나 2019년 말 코로나19 발생으로 2021년부터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2014~2015년 평균과 비교해 2021년 세계식량가격은 25.7%,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더해져 지난해에는 무려 46.9%까지 폭등했다. 불과 2년 사이에 식량가격이 1.5배가 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식량안보지수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코노미스트 임팩트의 세계식량안보지수(Global Food Security Index, GFSI)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종합점수 70.2점으로 113개국 가운데 39위를 기록했다. 특히 고소득국가 38개 중에서는 34위라는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이는 2012년 21위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한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의 식량안보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져 있음을 알 수 있다.

# 식량 위기 시대, 자급률은 86.2%에서 45.8%로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자연재해 빈도 증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세계적인 물류 대란과 보호무역 조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등으로 최근 먹거리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과거 세계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위기론이 대두되면서 세계는 국제 협력과 기술 발전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지만 최근 갑작스런 국제 정세 변화는 이러한 믿음에 의구심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은 이상기후와 코로나19의 여파, 경제적 충격, 전쟁의 파급효과 등으로 광범위한 식량 위기가 임박했다고 밝혔다. 세계무역기구(WTO) 역시 식량안보 각료회의를 통해 농산물의 불필요한 수출제한·금지 조치를 자제하자고 결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만 세계 각국에서는 57건에 달하는 식량 수출제한 조치가 부과됐으며 미국 농무부(USDA)도 2022/2023년도 주요 곡물 수급 여건이 전년보다도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른 위기감은 우리나라처럼 곡물 수요량의 80%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 수준은 2018년 기준 172개 국가 중 130위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에서는 33위로 최하위권이다. 정부가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식량자급률 목표를 정하고 이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의 자급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서류 건체중 기준)은 1970년 86.2%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로 2020년에는 45.8%까지 감소했다. 곡물자급률(서류 건체중 기준) 역시 같은 기간 80.5%에서 20.2%까지 추락했다.

# 코로나19, 식량안보 경종 울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는 우리 국민에게 식량안보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국경 봉쇄와 각국의 수출 제한 조치 등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식량을 살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키웠고 ‘식량이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낳은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2020년 4월 도시민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19 이후 농업·농촌에 대한 도시민의 인식과 수요 변화’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농업·농촌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서는 응답자의 67.6%가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비교해 국민 경제에서 농업이 ‘중요해졌다’고 답했다. 반면 ‘변화없다’는 응답은 28.7%, ‘덜 중요해졌다’는 응답은 3.6%였다. 특히 응답자의 74.9%는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비교해 식량안보가 ‘중요해졌다’고 답했으며 ‘덜 중요해졌다’는 응답은 1.4%에 불과했다. 코로나19를 비롯한 급격한 국내외 정세 변화는 식량과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농업·농촌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농업·농촌 문제가 나(국민)와 관련이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음은 농경연의 ‘농업·농촌에 대한 2021년 국민의식 조사 결과’나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지난해 실시한 ‘2022 공익직불제 소비자 인식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두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농업·농촌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식량생산을 지목하기도 했다.

# 식량자급률 제고 시도 연거푸 실패

과거 우리는 공공비축제도, 해외농업개발사업,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 사업, 아세안+3(한·중·일) 비상 쌀 비축 협정, 국제곡물 조기경보시스템 구축, 밭 식량산업 중장기 발전대책, 안전한 먹거리 공급체계 구축, 밀 산업 육성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식량자급률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패로 평가된다. 정부가 2012년에 2017년까지 30%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한 곡물자급률은 23.7%에서 23.4%로 오히려 떨어졌다. 이에 2017년에는 2022년까지 곡물자급률(서류 건체중 기준)을 32%로 높이겠다고 했지만 2020년 기준 20.2%에 머물며 더욱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해주와 동남아 지역에서 추진했던 농업개발 사업은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곡물사업은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하림 팬오션 미국 사업과 포스코의 우크라이나 사업도 시도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해 정부는 ‘식량주권 확보와 농가 경영안정 강화’를 12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정하고 식량안보 강화를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농식품부도 새정부 업무보고에서 식량주권 확보 방안으로 분질미 활성화, 밀·콩 자급률 제고, 해외 공급망 확보 방안을 제시했다.

# 국내외 생산·조달 기반 확대, 법제화 등 강조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국내 소비량이 많은 곡물 중 자급률이 낮은 밀, 콩 등을 중심으로 한 자급률 제고 필요성이 강조되거나 공공비축제도 대상 품목과 비축량을 늘리는 등 국내 식량 생산·조달 기반 확대가 우선 돼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 제기된다. 또한 해외농업자원개발 종합정보시스템 구축을 통한 민간 투자 확대 등을 통해 국외 식량 생산·조달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정환 GSnJ 인스티튜트 이사장은 최근 ‘식량안보, 솔직한 논의와 진정한 대책’ 보고서를 통해 “식량안보는 국민의 밥상을 지키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작황과 가격 변동성으로 농업이 경영위험을 크게 겪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완충해 영리적 동기로 소비자가 원하는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규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주곡의 생산과 소비 기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밀과 콩 등 다른 작물의 생산을 늘려야 한다”며 “취약계층의 농식품 접근성을 상시 점검하고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식량안보에 관한 법적 구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법률 제·개정이 강조되기도 한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명예이사장은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과 시행령에는 안전한 농수산물과 품질 좋은 식품의 안정적 공급이 명시돼 있지만 핵심적인 식량자급률 향상 방법이나 목표치 달성을 위한 관리·감독 의무가 없어 식량자급률 목표치 달성이 어렵다”며 “구체적 수단과 구속력을 가진 식량안보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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