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소비자물가지수 중 턱없이 낮은 비중 차지…공급 안정화가 중요

[농수축산신문=박현렬 기자]

총 지수 품목 수 458개 중
농축수산물은 78개 품목에 불가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이 물가상승 주범 아냐

수입 농산물 대체할 수 없는 농산물 생산을
영리적 동기로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생산해야

가격변동은 가장 큰 경영 리스크
쌀을 포함한 주요 품목에
가격위험완충제도 도입해야

지난해도 생산자 중심의 자율 수급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 추진됐지만 양파와 마늘의 수급 문제로 가격 급등락이 지속됐다. 제주에서 마늘 수확작업이 이뤄지는 모습.
지난해도 생산자 중심의 자율 수급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 추진됐지만 양파와 마늘의 수급 문제로 가격 급등락이 지속됐다. 제주에서 마늘 수확작업이 이뤄지는 모습.

 

기상이변 등 기후변화에 의한 애그플레이션과 더불어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일부 국가에서 정부차원의 전략 곡물 재고 비축분 확대와 식품·필수품의 수출금지 제한 조치가 시행되면서 국제 곡물 수급에 문제가 발생했다.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실질 가격 기준으로 201894.2에서 202099.2, 2021125, 지난해 상반기 평균 147.9까지 상승했다. 지난해 11135.7로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2020년 중반 이후에는 원유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제 원자재 가격과 해상운임·환율까지 상승해 국내 농산업과 제조업의 원가 부담이 가중됐다. 이 같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농업 생산비 부담으로 농가의 경영은 더욱 악화됐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일부 국가들의 자국산 식품원료 수출금지 조치 등으로 원료 수급 상황이 불안정했다. 우리나라는 식용유지류, , 탄산(CO2), 옥수수 등 상당수의 식품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원료가격 상승에 대한 여파는 고스란히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부담 증가로 이어졌다.

이 같이 곡물, 농자재, 수입 농산물 등의 수급 문제는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뿐만 아니라 농업 생산 전반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에 정부 대책을 수급 안정에 집중하는게 효과적인지, 물가안정에 집중하는게 성과가 있는 것인지 짚어봤다.

# 새 정부 물가안정 최우선 정책 집중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농림축산식품부의 업무보고 핵심 추진과제는 물가안정, 식량안보, 미래성장산업화, 농촌공간, 동물복지 등이다. 이 중 물가안정 과제에는 농식품 수급안정보다 물가안정에 관한 내용이 주로 담겼다.

실례로 지난해 추석이 하반기 농식품 물가 안정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하반기 국내 농산물 공급 안정화와 추석 성수기 물가 관리에 집중하면서 국민 가계와 농가의 부담을 완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정부는 식품업계 간의 물가안정을 위한 간담회와 더불어 농축수산물 수급 불안에 따른 가격 상승을 낮추기 위한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주재로 개최된 제1차 경제장관회의에서 발표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의 최근 물가 동향·민생경제 여건 부문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주요 곡물 생산국 수출제한 등에 따른 공급 차질로 글로벌 에너지·식량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수입 원자재가격 상승이 생활 물가 전반으로 확산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이에 대한 조치는 수입원가 절감, 식료품비 인하, 식재료비 경감 등일 뿐 농축산물 수급안정을 위한 정책은 없었다. 돼지고기·식용유·커피 등을 비롯한 수입품 원가상승 압력 완화와 김치·장류 등 부가가치세 면제·농축수산물 할인쿠폰 지급, 밀가루 가격·비료 매입비 지원·농산물 의제매입세액 공제 확대 등이 그것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1000)에서 농축수산물 가중치는 83.8로 서비스(533.4), 공업제품(348.4)보다 턱없이 낮은 비중을 차지한다. 품목성질별 동향에서도 총 지수 품목 수 458개 중 농축수산물은 78개 품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수급 문제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상승하면 물가상승의 주범인 것처럼 다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공영농수산물도매시장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물가지수 중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낮고 코로나19 이후 가공식품 소비가 급증해 신선 농산물의 직접 구매는 줄었는데 그럼에도 물가상승의 주범처럼 몰고 있다물가안정 중심의 정책이 지속된다면 농업인들의 농업소득은 감소하고 이는 농업 생산 기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생산자 중심 자율 수급 기능 강화 효과는 미미

농식품부는 농산물 수급, 가격 안정과 관련해 생산자 중심의 자율적 수급 기능의 내실화와 중앙-지자체 간 긴밀한 협업체계 구축을 통한 안정적 수급환경 조성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정책을 추진중이다.

그 일환으로 사전적·자율적 수급조절을 위해 지역별 주산지협의체를 활성화하고 채소가격안정제를 운영하고 있다. 협의체에는 출하조절, 시장격리 등 강화된 수급 의무를 부여하고 사전적 재배면적 조절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경작 준비 이전단계부터 협의체를 개최하고 면적조절을 의무화했다.

더불어 중앙정부-지자체 간 품목별 지원사업, 재배 동향 등을 협의하고 지자체는 생산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자율적으로 수급을 조절하고 있다.

농축산물 35개 품목에 대한 재배면적, 생산량 등 관측정보도 제공 중이다.

생산자 중심의 자율 수급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품목의 의무자조금도 운영 중이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일례로 지난해 2월 한국양파연합회와 한국양파생산자협의회, 전국양파생산자협회는 전남 고흥, 제주, 전남 무안에서 조생양파 밭 갈아엎기 전국양파생산자대회를 진행했다. 지난해 1월부터 양파 도매가격이 평년 1kg 상품 1000원 대비 크게 하락한 300~400원까지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에는 경북 의성, 상주, 전북 정읍, 김제를 비롯한 쌀 주산지에서 논 갈아엎기가 이어졌다. 이는 쌀값 하락에 따른 정부 차원의 대책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한 농업인단체 관계자는 자율적 수급조절을 위해 품목별 자조금위원회를 만들고 주산지협의체를 활성화하고 있지만 효과는 아직 크지 않다적정 재배면적, 연평균 품목별 소비량 등과 더불어 일부 품목의 경우 타 작목으로 전환을 위한 지원 정책 등이 지속돼야 자율적 수급조절 정책이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농산물 공급 안정화 중요

농림통계연보에 따르면 매년 6ha가 넘는 농지가 휴경되고 폐경에 이르는 농지도 매년 6000ha가 넘는다. 2000년대 이후 농산물의 실질가격이 상승하고 있음에도 휴경지는 증가하고 있다. 또한 거의 모든 작물의 재배면적도 감소하는 추세다.

이대로 가면 농업인력의 고령화 진전과 더불어 소비자가 원하는 농산물을 시장에서 구매하기 어려울 수 있다. 농산물은 작황 변동성이 크고 수요는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가격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 그만큼 경영위험이 크고 농업을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에 정부는 이 같은 위험성을 완충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경영위험을 완충하는 정책은 가격이 평년가격 이하로 하락한 경우 그 일부분을 보전해 경영위험을 줄이는 것으로 가격수준 자체를 정책적으로 높이는 것과 다르다. 미국도 주요 농산물의 가격 위험을 완충하기 위해 가격이 지나치게 하락하면 그 일부를 기준연도 재배면적에 따라 보전하는 가격손실보전제도를 운용 중이다.

또한 세계적 흉작, 국제 분쟁, 글로벌 공급망 장애 등으로 일시적 공급 부족이 발생하는 경우 지속 기간, 품목별 공급 부족량 등을 판단해 비축하는 방안도 확립해야 한다.

비축은 위기 시 소비자 밥상을 지키기 위한 방안이기 때문에 농산물은 곡물뿐만 아니라 과일, 축산물도 대상이 되며 자급률이 높은 농산물도 흉작 등에 대응해 비축제도 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한 공급망 단절에 이어 러-우 사태로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곡물과 비료가격이 급등하면서 농식품 가공업체와 농가의 경영여건이 악화됐다수입 농산물이 대체할 수 없는 우리 밥상에 오르는 농산물의 생산을 영리적 동기로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생산해야 한다고 밝혔다.

쌀을 포함한 주요 품목에 대한 가격위험완충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명환 GS&J 인스티튜드 시니어이코노미스트는 가격변동은 가장 큰 경영 리스크이기 때문에 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낮은 경우 차액을 보전하는 제도를 도입하되 다만 기준가격은 최근의 수급이 반영된 평년가격으로 정해 과잉생산 유인을 차단해야 한다대체 작물에 정부가 추진 중인 밀, 콩 등 전략 작물뿐만 아니라 중요 채소와 사료작물 등을 포함해야 재배면적 조정의 신축성과 농업 전체의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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