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산학협력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잘 나가던 기업이 나름 열심히 해도 주변 환경의 변화에 더 잘 적응하는 경쟁자에 결국 뒤쳐지는 현상을 ‘레드퀸 효과(Red Queen Effect)’라고 한다. 레드퀸 효과는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대사에서 유래한다. 왜 열심히 달려도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냐는 질문에 붉은 여왕은 “우리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주변의 배경도 그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어서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야 하고 앞서려면 현재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한다”고 답한다.  
 

한 나라의 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동차, 반도체, 조선, 가전, 방산 분야에서 선발 기업이 혁신으로 무장한 후발 기업에 밀려 순위가 뒤집히는 상황을 수없이 본다. 빠르게 변하는 주변 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고 혁신하지 못하면 도태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업은 양곡관리법 개정 추진에서 보듯 경쟁력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가 장래가 우려스럽다.
 

세계 농업은 지난 수십 년간 생산성 향상에 주력해 왔지만 최근 들어 선진국을 중심으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전자편집기술, 탄소중립, 토양보존, 생물농약, 저투입농업으로 근본적인 방향이 바뀌었다. 한 예로 병해충 방제라는 치료적 접근에서 건강한 재배환경을 통해 고품질 농산물을 수확하는 접근으로 변화했다. 가뭄, 고온, 홍수, 냉해 같은 기후변화로 작물에 미치는 환경 스트레스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빈번한 가뭄으로 물의 효율적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외부 환경 스트레스에 작물이 적응하도록 돕는 제품인 작물활성강화제(biostimulant)는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자리를 잡았고 다국적 기업들은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이 분야의 제품군을 강화했다. 최근에 다국적 기업인 코르테바가 스톨러와 심보그를 인수한 것과 신젠타가 발라그로를 인수한 것이 좋은 예다. 이 분야는 2019년 20억 달러에서 2025년까지 40억 달러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Dunham Trimmer 보고서) 
 

코로나19 백신 기술을 원용해 미국의 오렌지 농가를 괴롭혀 온 황룡병(HLB)에 대한 해결책을 개발한 사례도 있다. 2005년에 처음 발생한 미국 플로리다의 황룡병은 지난해에 2004년 대비 생산량을 80% 감소시켜 67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유발했다. 제주 감귤에도 퍼진다면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2018년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는 과학자 23명이 쓴 보고서에서 황룡병을 방제하는 단일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서 영감을 얻은 미국 농무성 연구팀은 나노바디(nanobody; 낙타과의 포유류에서 만들어지는 항체로 단일 사슬 항체라고도 불리며 분자가 작고 식물이나 동물의 체내에서 이동성이 좋아 기존 항체보다 효과가 높다)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효과가 있음을 착안해 유전자편집기술로 오렌지 나무에 공생하는 생물에서 나노바디를 생산한 후 식물에 침투시켜 황룡병을 예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미 의원들은 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등록 절차를 신속히 마련해 달라고 규제 당국에 요청했고 농생명공학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를 5년마다 갱신되는 농업법(Farm bill)에 반영해 달라고 함께 요구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산·학·연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유전자편집기술에 대한 법안이 확정되지 않았고 작물활성강화제를 대상으로 한 적용 법규도 미흡한 실정이다. 지속가능한 농업경쟁력은 과학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적절한 법적 인프라의 토대 위에서 갖춰진다는 것을 명심하고 조속한 조치를 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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