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중앙청과 과일1팀 팀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우리나라 도매시장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상장거래제도가 정착됐다. 도매시장은 가격 결정 방식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공하고 거래교섭력이 낮은 개별 출하주, 영세 농업인의 농산물을 원활하게 판매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 소비지 시장은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유통업체와 다양한 유통 채널이 등장해 유통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더불어 점차 다양해지는 소비성향 역시 농산물 유통시장의 다각화를 요구하고 있다. 도매시장도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가치 창출이 필요한 시기이다.

얼마 전 일본 도매시장을 방문해 최근 동향을 접했다. 일본의 도매시장 운영사례는 국내 도매시장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다양한 시사점을 보여줬다.

후지시마 히로지(藤島廣二) 전 도쿄농업대학(東京農業大学) 교수에 의하면 일본은 디지털시대가 열리고 농산물 유통 구조 역시 개편됐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기존 도매시장 거래제도를 개선해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했으나 도매시장 경유율은 해마다 감소추세이다. 이로 인해 많은 도매시장이 폐장되고 도매법인은 통합·합병돼 그 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후지시마 교수는 과거 도매시장이 농산물유통의 발전을 견인했으나 최근 주도권을 잃은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봤다.

우선 가공 채소와 과일 소비량이 증가하는 데 반해 일본 국내 생산량은 감소해 수입이 증가했다. 이로 인해 도매시장 경유율이 감소했다. 둘째로 산지의 규모화로 수직계열화가 가속됨에 따라 위탁판매에 비해 매취판매 비중이 증가해 도매시장의 적자가 커졌다. 이러한 수익감소는 공설도매시장과 민간도매시장의 폐쇄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중도매인 거래처가 일반 소매점에서 대형 양판점과 요식·가공업체로 변하면서 전문성과 규모화를 갖추지 못한 업체는 도태돼 양극화가 심해졌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타시장(大田市場)과 토요스시장(豊洲市場)은 활성화에 성공해 도매시장 지속 가능성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오타시장 내 도쿄청과는 출하주, 도매시장법인, 중도매인이 참여하는 시장협의회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매뉴얼을 정비했다. 또한 대형화·체인화되는 소비지 유통에 대응하기 위해 복합물류센터를 짓고 경매장 물류환경에 꾸준히 투자해 취급량이 증가하고 있다.

토요스시장과 시티청과는 경쟁력을 높이고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도매시장 이전, 시설현대화, 법인 간 제휴 등을 진행했다. 특히 식품 안전을 위해 폐쇄형 시설과 자동입체창고, 가공시설, 상품홍보관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렇듯 도매시장의 전반적인 위기 속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를 준비하면 활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도 지속적인 도매시장 활성화를 위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도매시장 종사자들이 정책 결정과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쟁력과 전문성을 극대화하면 소비자가 찾는 시장으로 변할 수 있다. 둘째 탄력적인 거래제도 운용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따른 효율성 저하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 도매시장 전체 거래의 80%가 경매로 진행된다. 도매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매방식의 고도화와 다양한 거래방식의 도입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도매시장 시설개선, 도매시장법인의 적극적인 산지 수집, 중도매인의 분산 능력 강화 등 도매시장 관계자들의 전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경매가 도매시장을 지탱하는 주요 거래제도였지만 향후에는 예약판매의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변화에 잘 대비해 도매시장이 한층 더 성숙해지고 농산물 유통의 중추적인 역할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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