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현대화·거래처 다각화·물류 효율화 통해 성장세 유지

상품 보존을 최우선으로
정온시설·저온 입체창고 등 완비
농산물 시장 반입~배송까지 최상의 품질 유지
가공·포장장 마련해 대형마트·소매점 등
요구하는 형태로 상품 재가공 가능

도매시장 내 가공·포장 시설과
정온시설 확충·일방향 운송 체계 등
사용자들 편의·효율성 최우선 고려

[농수축산신문=이두현 기자]

일본 농산물도매시장은 지난 20여 년간 경유율이 지속해서 감소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요스(豊洲)시장의 도쿄시티(東京シティ)청과, 오다(大田)시장의 도쿄(東京)청과 등 일부 도매시장법인은 시설현대화, 거래처 다각화, 물류 효율화 등을 통해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본지는 지난달 21일부터 24일까지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주관으로 농산물 유통업계·학계 관계자들과 함께 난관을 극복한 일본 도매시장들을 견학했다.

이를 통해 수도권 집중, 대형유통업체의 산지 진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도매시장에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살펴봤다.

 

# 취급물량 감소에 따른 일본 도매시장 쇠퇴

일본 국내 청과물의 도매시장 경유율은 200393.2%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976.9%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도매시장이 폐장하고 도매시장법인의 폐업과 인수·합병이 줄을 이었다.

198591개였던 중앙도매시장은 202165개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중앙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 역시 262개에서 156개로 줄었다.

이 같은 감소세는 청과류 생산량 감소에 따른 시장 축소와 경쟁 심화에 기인한다. 일본의 국내 채소 총생산량은 1989년 기준 약 1500만 톤이었으나 2019년에 약 1150만 톤으로 20% 이상 감소했다. 더불어 도매시장을 통해 농산물을 공급받던 소매점이 산지에서 직접 물건을 유통하기 시작하며 도매시장 경유 물량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 11월 요코하마 중앙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인 긴코(金港)청과가 해산했다. 긴코청과는 연간 거래금액이 2000억 원대였으나 최근 몇 년간 산지·소비지와의 거래에서 적정 가격을 관철하지 못해 적자가 계속돼 폐업에 이르렀다.

모리 타츠야 도쿄시티청과 전무는 고령화 등으로 인해 산지의 생산력이 떨어지며 도매시장의 취급물량이 줄고 있다산지가 시장을 고르는 상황으로 인해 법인들의 출혈 경쟁이 발생해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역시 이 같은 도매시장의 어려움을 인지해 2018년 아베정부는 도매시장 개혁을 중점과제로 추진했다. 아베정부는 도매시장의 농산물 수집·분산, 가격형성 등 기존 기능은 유지하면서 운영방식을 공공성에서 효율성 중심으로 전환하고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따라 도쿄도 등 도매시장 개설자 역시 도매시장법인의 운영을 세세하게 규제하지 않고 시장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있다.

 

# 상품성 보존을 최우선으로 한 토요스시장 시설 현대화

토요스시장의 시설 현대화는 국내 도매시장들이 참고할만하다. 토요스시장은 정온 시설, 저온 입체 창고 등을 완비해 농산물이 시장에 반입된 순간부터 배송되는 순간까지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고 가공·포장장을 마련해 대형마트·소매점 등이 요구하는 형태로 상품을 재가공 할 수 있도록 했다.

도매장, 기둥 양쪽으로 정온 시설이 달려 있다.
도매장, 기둥 양쪽으로 정온 시설이 달려 있다.

 

토요스시장과 국내 대표적 도매시장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온 시설이다. 가락시장에서 경매를 기다리는 상품들은 기온이 높건 낮건 외부나 화물차 안에 방치돼 시시각각 상품성을 잃고 있다.

이에 비해 토요스시장은 폐쇄형 시장으로 화물차량과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 항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출하된 농산물을 실은 화물차가 시장에 도착하면 전표를 받고 지정된 장소에서 대기하는 데 이 순간에도 화물차와 전기충전기를 연결해 내부 온도를 유지한다.

토요스시장 내 도매장의 기둥에도 대형 정온 시설이 설치돼 있다. 정온 시설은 여과된 냉기를 내뿜어 가까이 위치한 농산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도매장 전체를 22도로 유지한다.

자동 입체 저온 창고. 입구에 상품을 놓으면 정해진 위치로 반입돼 보관된다.
자동 입체 저온 창고. 입구에 상품을 놓으면 정해진 위치로 반입돼 보관된다.

 

입체 창고는 7도 내외의 적정온도가 유지되며 지게차로 입체 창고의 입구에 상품을 옮기면 정해진 위치로 상품이 반입된다. 각 파렛트에는 바코드가 찍혀 소유자와 반입 시점을 알 수 있어 선입선출 관리가 가능하다.

1층에서 3층까지 통으로 설치된 입체 창고는 800kg 파렛트 765개가 들어가 약 600톤가량의 상품을 보관할 수 있다. 입체 창고는 도쿄시티청과에서 설치했으며 일부는 도쿄시티청과가 사용하고 나머지는 중도매인·매참인에게 임대했다.

도매장에 하차한 상품 중 저온 보관이 필요하거나 가공·재포장을 하는 경우 수직반송기를 통해 3층으로 운송한다. 수직반송기는 4대가 있으며 최대 800kg의 파렛트와 지게차, 핸드 리프트 등을 옮길 수 있다. 3층에는 저온 창고와 선별·가공·재포장이 가능한 가공·포장장 등이 있다.

도매시장 내 가공·포장 시설과 정온 시설 확충, 일방향 운송 체계 등은 가락시장을 비롯한 국내 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에서도 중요한 화두다.

시찰에 참석한 학계 관계자는 도매시장의 시설은 직접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편리와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탁상공론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방향으로 시설현대화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토요스시장은 1935년 개장한 츠키지시장이 노후화되고 유통 가능한 물량이 부족해짐에 따라 이전 시설현대화사업의 결과로 설립됐다.

토요스시장은 청과동과 수산도매동, 수산중도매인동으로 구성됐다. 전체 건립비용은 약 6조 원으로 대부분 도쿄도에서 부담했다. 다만 도매시장 내부 시설은 오롯이 사용자에게 맡겨 효율적 공간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저온창고. 3층에 위치한 저온 창고는 중도매인, 매참인이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저온창고. 3층에 위치한 저온 창고는 중도매인, 매참인이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 고객·사업 다각화 등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쿄시티청과의 노력

토요스시장 내에서는 도쿄시티청과의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도쿄시티청과는 도매시장이 쇠락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설현대화에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고객 다각화, 신품종 도입 등에 힘썼다.

도쿄시티청과는 2002년 츠키지시장에서 도쿄중앙(東京中央)청과와 도쿄츠키지(東京築地)청과가 합병해 설립됐다. 이후 체계적인 상품 관리, 역량 있는 매참인 확보 등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2020년 기준 거래금액 8500억 원을 기록했다.

츠키지시장과 토요스시장 주변에 즐비한 고급 음식점들은 도쿄시티청과가 유통하는 상품의 주요 고객들이었다. 도쿄시티청과는 이에 맞춰 고추냉이, 버찌, 일본 전통 채소 등을 주로 취급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음식점의 운영이 어려워지고 도쿄시티청과의 매출 역시 하락했지만 이를 타개하기 위해 코로나19의 영향이 덜한 대형마트, 소매점 등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체계적인 배송 시스템을 갖추고 매참인이 가공·포장장을 활용해 대형마트와 소매점의 요구에 맞출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츠키지시장에서 이전한 중도매인·매참인 외에 대형마트·소매점과의 거래 역량이 있는 매참인을 적극 영입해 거래물량을 늘렸다.

또한 도매장 내에 프레시라보(FreshLabo)라는 상품 소개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다양한 신품종을 공개하고 농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등 상품 소개에 힘쓰고 있다.

프레시라보. 신품종, 농산물을 이용한 요리 등이 소개된다.
프레시라보. 신품종, 농산물을 이용한 요리 등이 소개된다.

 

이외에도 도쿄시티상사라는 자회사를 둬 상품을 가공·재포장해 물건을 납품하는 매참인과 같은 역할도 수행하고 시장 내 물류 업무를 맡기도 하는 등 수익 다각화에 노력하고 있다.

국내 대다수 도매시장의 시급한 문제는 취급물량 부족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하가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역량 있는 중도매인이 필요하다. 국내 도매시장법인도 매참인 확보 등 도쿄시티청과의 다양한 시도를 참고해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권승구 동국대 교수는 국내 도매시장이 상품의 수집 분배라는 유통의 본질을 잊고 경쟁에만 힘쓰는 경향이 있다이제는 소비지의 요구에 발맞춰 유통과정에서 상품성 유지와 가공 등이 적절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도매시장이 물류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콜드체인 물류 시설을 완비하면 대형유통업체의 수요, 온라인거래 도입 등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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