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박유신 기자]

1950년대에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자동차 게임의 이름에서 유래된 치킨게임(chicken game)’.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서로 마주 보는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는 게임이 성행했는데, 마주 달리는 차가 충돌하기 직전에 운전대를 바꾸는 사람이 겁쟁이(chicken)로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에는 여러 분야에서 이해 당사자가 모두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을 초래하는 극단적인 경쟁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최근 치킨게임이라는 용어가 가장 어울리는 농업부문의 사안을 꼽자면 단연코 양곡관리법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12월 초과생산 쌀에 대한 시장격리 의무화를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고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도 지난해 10월부터 양곡관리법 개정을 두고 치열한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급기야 윤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지난 4일 국무회의를 열고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하면서 여·, 정부 이에 더해 농업단체 간에도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제헌 헌법에서부터 명문화된 국회 입법권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지금까지 66건이 행사됐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45)과 박정희 대통령(5) 시절을 제외하고 민주화 이후 시기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7, 노무현 대통령이 6, 이명박 대통령이 1, 박근혜 대통령이 2건을 행사했다. 하지만 국회 재의결을 통해 법률이 확정된 것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측근 비리 의혹 특검법뿐이었다. 나머지는 부결이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이기도한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다시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재의결 조건을 충족할지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국민의힘 의석 수가 재적 299석 중 115석을 차지하고 있어 재의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과연 어떤 법일까. 야당의 주장처럼 쌀값 정상화법일까, 여당과 정부의 표현처럼 남는 쌀 전량 강제 매수법’, ‘농가 파탄법일까. 여야의 주장이 다르고, 농업관련 단체 간의 주장이 다르고, 학자 간의 주장이 다르다. 이제는 농업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이슈로 번지다 보니 어느 주장이 진실인지도 모호한 지경이다.

어떤 이는 ‘~하게 할 수 있다‘~해야 한다로 바꾸는 양곡관리법에 명시돼 있는 시장격리 관련 자구수정 하나가 온 나라를 떠들썩 하게 만들 문제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법률(法律)이 갖는 의미를 감안하면 자구 하나의 문제가 아닌 식량, 나아가 농업정책의 기준과 추구하는 방향성의 변화가 동반될 수 있어 쉬이 결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특히나 우리 국민과 농업인, 정부 각자가 갖고 있는 쌀에 대한 의미가 특별하기에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쌀이 이렇게나 주목받고 극단적인 대립이 벌어졌던 때가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어느 측의 주장이 맞는지, 어느 것이 농업, 농업인, 국민을 위하는 선택이냐는 추후 결과를 지켜보면 명확한 것이다. 그 시기가 빠르면 올해 수확기일 수도 있다.

다만 과거 모 교수가 정책의 의미를 기술해 놓았던 게 기억이 난다. 정책은 물체를 다루는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를 대상으로 하며, 그 결과는 미래에 나타나기 때문에 사전적이어야 하고 따라서 변화를 고려해 현재 시점에서 준비하고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쌀을 포함한 농업이 갖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양곡관리법 개정을 두고 서로의 주장이 다르다 보니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고 쌀산업에 있어서도 과거와 다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변화를 직시하고 정책의 변화를 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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