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홍정민 기자]

 

세계적 환경과학자인 바츨라프 스밀은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라는 제목의 신작을 통해 우리의 문명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에너지와 식량, 그리고 물질세계에 대해 각종 숫자로 다양한 사례를 들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때 종말론과 특이점이 아우르는 범위 내 어딘가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최근 경기 포천에서 계속 발생 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어떻게 봐야할까?

우리나라에선 20199월 첫 발생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ASF는 여전히 야생멧돼지와 돼지사육농장에서 발생이 지속되면서 올해로 벌써 발생 5년 차를 맞고 있다.

정부가 나서 야생멧돼지를 잡고 8대 방역시설을 설치하면서 차단방역에 나서고는 있지만 ASF 바이러스의 남하 또는 전국화 우려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는 모양새다.

기억을 되살려 대한한돈협회가 ‘ASF 해외 전문가 초청 세미나를 개최한 201710월로 돌아가 자료를 찾아보면 당시 세미나의 결론은 이랬다.

ASF는 지구상 동물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질병 중의 하나로 ASF를 예방하고 통제하는 데 이용할 백신이 없기 때문에 결국 양돈업은 물론 관련 산업이 무너질 수도 있어 비발생 지역에서는 바이러스 유입을 막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만일 유입됐을 경우 조기 신고를 통한 조기 검출과 전파방지를 통한 신속한 조기 박멸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선 방역당국 뿐만 아니라 농가, 수의사, 관련 산업 종사자 등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필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ASF와 직접적인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사상자를 낸 코로나19의 암울한 터널에서 수년 넘게 발이 묶이는 경험을 했다. 천문학적인 돈과 노력이 투입된 것은 물론 사안의 심각성과 중요성 등을 이유로 각종 제도와 규정을 초월하면서까지 백신과 치료제 등이 속속 개발·적용되면서 우리는 터널의 끝을 통과해 과거의 기억으로 코로나19를 보내는 상황을 맞고 있다.

대한한돈협회와 한돈협회 경기도협의회, 백신을 개발 중인 동물약품 업체들, 그리고 몇몇 질의에 답한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입장을 보면서 20234월 드는 생각은 발생 5년 차를 맞은 ASF는 이제 조기 신고를 통한 조기 검출과 조기 박멸은 사실상 힘들다는 점이다.

ASF가 접촉감염되는 바이러스 특성상 보다 철저한 차단방역을 해야 하겠지만 생존이 걸린 경기지역 농가들의 바람대로 이젠 백신 개발을 보다 서둘러야 한다. ASF 전용 연구시설을 내년 4월 준공하겠다는 검역본부의 계획이 있지만 현장 연구의 경우 그보다 더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규정이나 규제 등 걸림돌이 있다면 과감하게 풀 필요가 있다. 속도와 효율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가 쉽지는 않지만 돼지 재입식과 관련해 인센티브를 주면 얼마든지 지금까지의 백신 연구개발 결과로도 공격접종시험을 하겠다는 경기권 농가들이 있는 만큼 ASF를 예방하고 통제하는 데 이용할 백신 개발을 하루라도 서둘러야 한다.

위기와 기회는 공존한다고 볼 때 바츨라프 스밀의 신작 결론처럼 미래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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