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보호제 오남용·약제 저항성 문제 등 심화
전문성 강화 요구

해외선 법률로 강력하게
자격 갖춘 전문가 통해 작물보호제 사용

기존 판매관리인들의
권리침해 부분도 함께 논의돼야

신규 식물의약사 육성과 동시에
기존 판매관리인 흡수할 수 있는
특별전형 제도 운영도 필요

[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식물의약사 제도 도입을 위해선 식물의약사의 명확한 개념·정의 확립, 기존 판매관리인들의 제도권 수용 방안 등이 우선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식물의약사 제도 도입을 위해선 식물의약사의 명확한 개념·정의 확립, 기존 판매관리인들의 제도권 수용 방안 등이 우선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식물 병리전문가인 식물의약사관련 제도 도입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작물보호제 오남용과 약제 저항성 문제 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한 작물보호제 사용을 위한 전문가 제도 도입에 대한 요구 증대에 따른 것이다.

이에 식물의약사 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방향성, 해결 과제 등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본다.

 

# 18년째 논의 지지부진...‘이번엔 반드시강력 의지

식물의약사 제도는 병해충과 잡초 등의 진단·처방에 있어 전문성을 제고해 작물보호제 오남용을 막고 농업 생산성 향상을 통한 농업인 소득 제고, 안전한 농산물 생산에 기여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현재 농약관리법과 시행규칙에선 작물보호제 판매업을 영위하려는 자는 작물보호제 판매관리인을 두도록 하고 있다. 판매관리인에 대해선 관련 업무 3년 이상 종사, 농화학기술사·식물보호산업기사 이상 자격 요건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전문적 교육 과정 등이 부재한 탓에 생육을 비롯해 작물 전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진단과 처방에 대한 전문성 부족 문제가 계속 제기돼 왔다. 식물의약사 제도 도입 논의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됐다.

식물의약사는 최근 갑자기 부상한 문제는 아니다. 18년 전인 2005년 한국식물병리학회, 한국농약과학회, 한국응용곤충학회, 한국잡초학회 등은 작물보호제 오남용에 따른 농작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식물의약사법 제정에 뜻을 모았다. 이후 국회에 식물의약사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당시엔 관련 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국회에선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폐기됐다.

한동안 잠잠했던 식물의약사법 제정 논의는 20213월 전북대, 한국농수산대, 순천대로 구성된 농촌진흥청 항생제 농약 내성 최소화 모델 정책연구팀이 출범하면서부터 다시 공론화되고 있다. 정책 연구팀과 대학, 관련 학회와 기업 등이 참여한 식물의약사 추진위원회가 발족되고 몇 차례의 전문가 포럼, 심포지엄 등을 거치면서 업계에선 이번엔 반드시 식물의약사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와 목소리가 모이고 있다.

 

# 식물의약사 필요성 다수가 공감

작물보호제의 진단·처방 등과 관련한 전문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수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농진청 정책연구팀이 전국의 농업인 370명, 판매관리인(시판상) 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농업인의 80.3%작물보호제 구매·사용 측면에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판매관리인의 86.6%병해충 진단·작물보호제 처방 전문가가 별도로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사실상 식물의약사와 같은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데 농업인과 판매관리인의 80% 이상이 공감한 것이다.

이 설문에선 농업인 중 작물보호제 구입 시 병해충과 약제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는 응답은 35%에 불과했고 작물보호제 관련 교육을 받은 경험을 묻는 질문에도 23.2%없다고 답했다. 작물보호제와 관련한 농업인 대상 교육과 정보 등이 다소 불충분한 셈이다.

이 때문에 농업인 대다수가 판매관리인의 추천에 의존해 제품을 구매하고 있지만 정작 판매관리인은 약제 추천 시 작용기작을 고려한 작물보호제 추천을 가장 큰 어려움(복수선택, 62.2%)으로 꼽았다. 전문적인 분석을 통한 처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밖에도 판매관리인의 대다수(복수응답, 80%)는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 약제를 추천하고 있었으며 과거 사용 이력 확인 없이 재배 작물과 병해충 이름만으로 처방하는 경우(복수응답, 40%)도 많았다.

김재수 전북대 교수는 오이만 해도 오이총채벌레 관련 등록 약제는 135품목이고, 이를 작용기작별로 분류하면 15개 이상이라며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도 제대로 알고 처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작물보호제 연구개발·등록 단계의 전문성은 높지만 유통 단계의 전문성은 비교적 낮은 편이라며 유통 단계에서의 전문성을 상향 평준화하고 병해충·잡초의 진단·처방에 있어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해외선 법률로 강력한 자격 요건 요구

해외에선 각 나라별 운영 형태는 다르지만 대부분 현재 국내의 판매관리인 개념에 비해 보다 확대된 영역에서 전문성을 요하고 있다. 진단과 처방뿐만 아니라 작물보호제의 구입, 살포 시에도 관련 자격을 갖춘 전문가를 통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은 작물보호제의 사용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농업기술센터 지도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보급지도원 또는 식물방역법에서 정하는 자의 지도를 받도록 하고 있다. 관련 법에서는 이들의 업무로 직접 농업인들에게 농업 생산 방식의 합리화, 농업 경영 개선을 위한 과학적 기술과 지식 보급 지도를 할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유럽은 지속가능한 작물보호제 사용에 대해 규정한 법에서 일정 자격을 갖춘 전문적 사용자를 통해 작물보호제를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도 사용제한작물보호제(restrict use pesticide)를 명시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사적 살포자상업적 살포자로 구분해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데 둘 모두 지자체의 시험과 교육과정 등을 통해 자격을 인증받아야 한다.

권덕호 한국농수산대 교수는 미국에서 정하는 사용제한작물보호제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성분들도 포함돼 있다이는 곧 유럽과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전문성을 갖춘 자격 있는 자를 통해 작물보호제를 살포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산림 부문에선 이미 식물의약사 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2018년부터 아파트 단지와 공원 등 생활권의 수목을 관리하기 위해 시행 중인 나무의사 자격제도. 전문성을 갖춘 나무의사가 수목 피해의 진단·처방, 예방·치료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재 거론되는 식물의약사법과 유사하다.

 

# 기존 판매관리인 제도권 수용 논의 필요

지난달 20일 전북대에서 열린 식물의약사 정책 토론을 위한 심포지엄에는 농촌진흥청과 국립농업과학원 등 관련 기관, 학계, 업계 관계자들이 토론장을 가득 채워 식물의약사 제도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나영은 농진청 농자재산업과장은 식물의약사 제도 법제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이를 위한 첫 단계로 식물의약사에 대한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 과장은 식물의약사가 다룰 업무 영역을 농작물로 한정할지 더 넓게 볼지, 진단·처방에 그칠지 방제까지 확대할지 등 기본적인 정의가 명확히 서야 농진청 내에서도 관장 부서가 정해지는 등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에 작물보호제 판매 업무를 맡아온 판매관리인들을 제도권 안으로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영식 전국작물보호제유통협회 전무는 법 제정을 통한 규제 강화를 위해선 기존 판매관리인들의 권리 침해에 대한 부분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현 제도 하에서 식물의약사 제도 도입 목적인 농업 생산성 향상과 안전한 농작물의 생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판매관리인들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추진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돌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김재수 교수는 정규과정과 실습·자격 시험 등을 거친 신규 식물의약사를 육성하는 것과 동시에 기존 판매관리인들을 흡수할 수 있는 특별전형 제도의 운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9년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는 식물의약사법 제정안 검토 결과를 발표하며 5000여 개소(2009년 기준)에 식물의약사를 공급하는 데 10여 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됨을 고려할 때 기존 판매관리인 교육 강화 등 현실적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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