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영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가축질병은 국내에만 한정된 문제아냐

해외에 있는 유수의 연구관

국제기구들과 적극적 협업·협력해야 한시라도 빨리 탈출구 찾을 수 있을 것

우리는 현재 국가 간의 장벽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검역 과정을 거친 사람과 동물, 축산물 등은 48시간 안에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세계화는 인류의 삶과 문명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문제는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도 국경을 넘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처음 보고된 후 전 세계로 번진 코로나19의 놀라운 전파 속도가 전형적인 예이다. 
 

2019년 9월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이라 불리는 가축 질병이 국내에도 발생했다는 소식을 주요 매체에서 속보로 전했다. 중국에서 2018년 8월 첫 발생 보고가 된 지 거의 1년 만이었다. 국민들에게 이름도 생소했던 가축질병이 뉴스 속보로 등장했던 이유는 이 질병이 백신도 치료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ASF처럼 치료 방법이 없거나 해외에서 확인되지 않은 가축질병의 발생은 축산 농가는 물론 축산업 전반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을 일으킨다. 가축 질병을 예방하거나 확산을 막기 위해 우리는 주로 백신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상용화된 백신이 없는 질병이나 변이가 다양해서 백신의 효과가 낮은 가축질병들도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의 유수 연구기관들은 가축질병의 원천적인 해결이 가능한 ‘질병 저항성 품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도 ‘가축질병 저항 유전자 선발’을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가 방역에 위협이 되는 고위험의 가축질병 병원체(ASF 등)는 질병 전파 위험이 있어 국내에서 연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연구에 필요한 국외품종 가축과 관련 정보 수집에도 한계가 있다. 축산과학원은 2019년 9월 국제축산연구소(ILRI)와 공동으로 가축질병 저항에 관한 국제 협력 연구를 시작해 4년째 수행하고 있다. 
 

협력 기관인 국제축산연구소의 큰 미션 중 하나는 개발도상국의 식량 문제 해결이다. 식량 안보에 위협이 되는 가축질병을 극복하는 저항성 연구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이 연구가 결국에는 개발도상국 축산 농가들이 가지고 있는 가축질병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돼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ASF는 백신·치료제가 없는 돼지의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질병이지만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혹멧돼지(Warthog)는 임상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다. 축산과학원 연구팀은 올 초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국제축산연구소 본부를 방문해 혹멧돼지의 ASF 감염 면역반응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일반 사육 돼지와 혹멧돼지의 감염 후 핵심 면역 인자를 구분해 혹멧돼지에서 감염 후 임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원리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ASF 감염 저항 유전자를 선발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방대하게 축적된 ASF 연구 데이터와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연구 환경을 가진 국제축산연구소, 다양한 ASF 연구 경험과 선진 연구 역량을 갖춘 축산과학원, 두 기관의 장점이 더해져서 좋은 연구 결실을 맺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세계화로 가축질병 병원체의 국경 문턱이 낮아지고 기후변화로 새로운 질병들이 출현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지금 상황은 가축질병 문제의 대안 마련을 위해 감염 저항성 연구를 비롯한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해야 할 때다. 가축질병은 국내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가축질병이라는 터널의 새로운 탈출구는 해외에 있는 유수의 연구기관·국제기구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협력해야만 한시라도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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