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도착한 멕시코 칸쿤공항의 날씨는 맑았지만 매우 후덥지근했다. 칸쿤은 8~~16세기간 고도의 마야문명이 꽃 피었던 유카탄반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휴양도시다. 강국 스페인이 1520년에 침공하여 철저하게 파괴한 유적들이 산재한 지역으로, 다시 말하면 힘으로 강자가 약자를 몰락시킨 역사의 현장에서 다시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대립이 진행된다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제5차 WTO(세계무역기구)각료회의는 9월 10일부터 시작되고, 총회와 별도로 각 분야별 의장(Chairman이 아닌 Facilitator라고 부름)들이 WTO일반이사회 카스티요 의장초안을 가지고 의견조율에 들어갔다. 농업부문은 싱가폴의 조지 여 장관(시애틀, 도하각료회의에서도 농업분야 의장)이 맡아 각국대표, 그룹별 대표 등과 만나 의견을 듣고 나름대로의 조정안을 13일 제시하였다. 특히 의장안을 강하게 반대한 인도, 브라질이 주도하는 G-21(개도국), 한국, 일본, 노르웨이, 스위스 등 수입 9개국으로 구성된 G9의 주장과 미국, EU의 이해를 일부 반영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개도국들이 강하게 주장한 수출보조와 국내보조에서 미국과 EU의 양보를 얻어내고, G9이 주장한 관세상한선 철폐주장에 최소한의 품목에 대한 예외인정(선진국의 특별품목)을 추가하였다. 반면 미국이 요구한 개도국의 시장개방분야에 의장초안에 선택사항인 스위스공식적용과 개도국간 0~~5%의 관세품목군의 설치외 EU의 관심사항인 평화조항(Peace Clause) 연장조치의 명시를 추가하였다.

여 장관의 수정안에 대하여 미국과 EU는 불만은 있으나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평균 관세율이 높고(약 124%) 100~200%수준에 많은 품목이 포함돼 있는 인도가 개도국간 0~5% 관세품목군 설치에 크게 반발하고, 국내보조 및 수출보조와 평화조항 연장에 대하여는 브라질 등이 반대하였다. 또한 TRQ증량 문제가 해결안된 한국과 일본 등 G9이 수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9월 14일 오전 7시 30분 마지막 주요국회의(Green Room)가 시작되고 순서에 따라 먼저 논의가 된 싱가폴문제(무역원활화, 정부조달구매, 투자, 경쟁정책에 대한 협상개시문제)에서 ACP국가 등 개도국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협상이 난관에 부딪쳤다. 이에 따라 의장인 멕시코 데르베스(Derbez) 외무장관이 회의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결국 14일 오후 각료회의의 결렬선언을 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예견은 되었으나 농업분야가 아닌데서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결국 이번 협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농업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 회의 결렬의 가장 큰 원인은 개도국의 입장강화를 선진국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선진국들이 개도국의 주장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과거와 같이 협상주도국(미국, EU)이 합의하면 결국 따라올 것이라고 안이하게 대응한 점이다.

일부에서는 WTO의 의사결정과정 즉 146개 회원국의 만장일치제도(consensus)에 원인이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WTO가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한 점이다. 자기들은 제3자의 입장에서 각국의 주장을 나열하고 당사국들이 합의해 오기만 기다리고 적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UR당시를 돌이켜보면 1993년 봄까지 협상이 다시 진전을 보지 못하자 9년간이나 이끌어온 던켈 사무총장을 과감히 물러나게 하고 아일랜드 검찰총장을 지낸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서덜랜드로 사무총장을 교체하였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각 회원국대표들을 불러 그 동안의 이견을 합의해오라고 세차게 몰아 부쳤다. 특히 협상 막바지인 12월초 우리와 미국의 쌀협상이 부진하자 양국대표단을 불러 UR협상을 무산시키려 한다고 무섭게 몰아쳐 기한내에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각료회의 결렬로 협상주도국인 미국, EU뿐 아니라 WTO의 지도력에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 반면 G21을 중심으로 하는 개도국 입장이 상대적으로 강화된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허브 코헨이 지적하는 협상의 3대 요소 (TIP; 시간 Time, 정보 Information, 힘 Power)중 가장 중요한 힘(Power)에 있어서 과거의 강자(선진국) 주도의 힘에서 이제는 약자(개도국)의 힘과 어느 정도 균형(Balance)을 이룬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이번 협상결과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먼저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첫째, 비록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지만 관세상한선의 예외조항(선진국형 SP)을 추가한 점을 들 수 있겠다. 본래 의장초안 2조 2항(관세상한선 설정 또는 TRQ의 확대) 설정이 한국과 일본(쌀)을 겨냥한 것이 목적인데 일단 한, 일, 대만의 쌀은 이를 피할 수 있는 최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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