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돈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많은 나라가 자국 이익 극대화 위해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검증 마치고

상업화할 수 있도록 법·제도 정비 중
우리도 뒤처지지 않게 태세 갖춰야

 

인류는 최소 기원전 6,000년 전부터 국가를 세우고 사회를 구성하면서 체제 안정을 위해 식량의 확보를 우선했다. 이러한 인류의 식량 확보 열망은 지금까지 이어져 녹색 혁명을 성공시켰으며,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삶의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빠르게, 대량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정에서 부작용도 발생했다. 기업의 압도적인 종자 생산량과 품질에 밀려서 각 나라의 다양한 재래종과 토착종이 농업 생태계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바나나를 예로 들 수 있다. 지금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 품종으로, 이전에 먹던 그로미셀 품종이 파나마병으로 1965년 멸종한 후 변종을 발굴해 개발한 것이다. 현재 캐번디시 품종도 파나마병으로 위기를 맞고 있으나 저항성 품종육성에 쓸 유전자원이 없어 멸종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다.

현재 기후위기로 인해 인류의 식량 확보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에 많은 나라가 유전적 병목(genetic bottleneck), 전통 육종기술의 느린 발전, 적절한 유전자원의 부재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원 확보와 새로운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유전자가위 기술’이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인류가 지난 20년간 쌓은 생물학, 분자생물학, 육종학 등의 결정체로 지금은 10여 년 전 개발된 크리스퍼-카스9 (CRISPR-Cas9)이라는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이 기술은 세균이 자신의 몸을 방어하는 원리를 활용한 것으로 세균이 병원체의 특정 유전체 조각을 자신의 유전체 한쪽에 저장해 두었다가 병원체가 침입하면 저장했던 정보와 비교해 일치하는 부분을 찾는다.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만 찾아가는 RNA를 만들어 병원체 유전체에 붙인 후 그 부위를 카스9 단백질로 잘라내 침입한 병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2007년 샤르팡티에 박사와 다우드나 박사는 이 원리를 이용하면 RNA 서열을 수정할 수 있으며 카스9 단백질로 목표 유전자 부위를 절단, 유전체를 교정할 수 있음을 증명해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최근 유전자가위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 이 기술을 적용한 생물은 교정 부위를 제외하면 원래 생물과 완전히 같고, 화학적·물리적으로 만든 변이체와도 다를 게 없다고 한다. 현재 전 세계에는 화학적·물리적으로 얻은 300여 개의 변이 품종이 수십 년 전부터 활발하게 경작되는 중이다.  

국립농업과학원은 2021년 필요한 형질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도입할 수 있는 디지털 육종과 유전체 교정을 이용한 변이체 육종 연구를 중점 연구 분야로 지정해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벼, 옥수수 등과 관련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대학이나 기업과 함께 콩, 밀 등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 협력망도 구축하고 있다.  

많은 나라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검증을 마치고 상업화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 중이다. 그 결과,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는 상업용 품종이 출시됐으며, 중국, 방글라데시 등에서는 유전자 재조합(GM) 작물과 함께 유전자가위 기술 적용 작물의 상업화 규제를 완화한 상태다. 현재 국내에서는 유전자가위 기술 적용 작물도 유전자 재조합 작물과 같은 것으로 간주해 상업화와 관련하여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날개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우리만 운동화 끈을 동여맬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도 세계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태세를 갖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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