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농협의 수상한 움직임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조생종 벼 수매를 앞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공공비축미 공급을 요구하며 벼값 상승세에 발목을 잡은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 농협경제지주와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전국협의회는 쌀 재고 부족을 이유로 정부의 공공비축미 공급을 요구했다. 지난 5~6월 정부의 조속한 산물벼 인수를 촉구하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양새다. 당시 농협은 쌀값 안정을 위해 RPC와 벼 건조저장시설(DSC)에 보관 중인 지난해산 공공비축 산물벼를 서둘러 인수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6월 30일 12만8000톤에 달하는 공공비축 산물벼를 전량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2달여가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농협은 벼 재고가 없다며 정부에 공급을 요구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문병완 농협 RPC전국협의회장은 “정부 공공비축미는 인수하면서 관례적으로 수급상황 등을 고려해 필요한 물량 만큼만을 인수해왔다”며 “현재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국적으로는 재고가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시장에 공공비축미를 풀되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삼으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농협 쌀 재고는 20만 톤으로 통상 한 달에 12만 톤이 소진된다고 볼 때 다음달에는 최소 3만~4만 톤이 부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농업인단체들은 ‘농가를 죽이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연말에 정부에서 희망물량을 별도 절차없이 바로 인도한다고는 하지만 다음달 수확기 농가의 수매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2021년 8월 수확기를 앞두고 정부가 8만 톤을 시장에 풀면서 쌀값이 곤두박질쳤던 사례를 들며 ‘농가를 죽이려는 처사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곧 조생종 벼가 수확을 시작해 이달 말부터 수매에 들어가는데 공공비축미를 푸는 것은 2021년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쌀값을 올리겠다고 한 만큼 가공업체의 수익창출을 위해 조생종 가격을 망가뜨리면서 농가를 죽이는 방법 말고 지역별 공급 부족 문제 해결에 나서는 등 다른 방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1년 쌀값(20kg 정곡)이 5만5000원 후반대를 기록하며 높게 형성되자 정부는 추석 명절 수요를 대비한다며 정부양곡 8만 톤을 시장에 공급했다. 이후 쌀값은 급격히 곤두박질하기 시작해 다음 해 8월 4만 원 초반대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2021년 국정감사에서 ‘수확기 공매가 쌀값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2021년 6월부터 2022년 8월까지 25일 기준 산지 쌀값(20kg 정곡) 추이 [통계청 자료 재구성]
2021년 6월부터 2022년 8월까지 25일 기준 산지 쌀값(20kg 정곡) 추이 [통계청 자료 재구성]

오는 28일부터 수매에 들어가는 강원 철원지역과 다음달 초부터 수매를 시작하는 경기 여주·이천지역 등 조생종 벼를 생산하는 지역에서도 이번 인수도 요구에 ‘농협이 오히려 쌀값 상승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라고 힐난했다.

이들 지역 한 조합장은 “조생종 가격이 무너지면 중만생종 가격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 불과 얼마 전에 공공비축미 인수를 주장하고 40~50일 만에 인수도를 주장하는 것은 40~50일도 못 내다보고 경영을 한다는 소리냐”며 “수확기를 앞두고 조생종 벼 재배지역에서는 수매를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물량을 조절했는데 가격이 오르니까 다 도정해서 팔아버리고 재고가 없다고 달라고 주장을 하는 게 진정 농가를 위한 일이냐”고 말했다.

강원·경기지역의 지난해 수매가는 40kg 조곡 기준 8만~8만1600원선이었이며 올해도 현재 7만 원이 거론되고 있는 벼값을 감안하면 낮지 않은 수매가가 책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농림축산식풉부 관계자는 “현재 재고가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희망물량에 한해서만 산물벼로 인도하고 수확기 이후에도 판매되지 않은 물량은 환수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