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본격적인 수확기를 앞둔 농촌이 벼 수매가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생산비 증가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농업인과 지난해 양곡사업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던 농협의 입장 차가 주된 원인이다.

이에 따라 최근 상승세인 쌀값과 오른 생산비가 반영된 수준의 수매가를 요구하는 농업인과 지난해 적자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농협 사이의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지난 16일 밝힌 정부양곡 산물벼 5만 톤 방출 계획은 이러한 신경전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과 전국쌀생산자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조생종 벼 수확이 시작되는 시기에 정부양곡 방출을 결정한 것에 대해 ‘정부가 쌀값 폭락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며 “농업인은 지난해 공포영화 수준으로 상승한 생산비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폭락한 쌀값으로 쌀농업 유지에 큰 타격을 겪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산물벼 방출 중단과 나락(벼)값 1kg당 2300원 보장, 공정가격제 도입 등을 촉구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도 다음날인 지난 17일 성명서를 통해 정부양곡 방출 중단과 정곡 기준 쌀값 80kg기준 26만 원 보장, 저율관세할당(TRQ) 폐지 등을 촉구했다.

나락값 2300원과 정곡 80kg기준 26만 원을 40kg 조곡(벼)으로 환산하면 각각 수매가 9만2000원과 8만6700원 정도가 된다. 지난해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 전국 평균 매입가가 6만1621원이었으며 민간 RPC가 5만8375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소 2만5000원 이상의 수매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20kg기준 산지 쌀값(정곡)은 4만8591원으로 지난 5월 15일부터 10주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5만 원이 넘었던 2021년 수확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4만 원 초반이던 지난해 수확기보다는 크게 올랐다.

하지만 생산비 부담도 크게 증가했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2022년산 논벼(쌀) 생산비조사 결과’에서는 20kg당 쌀 생산비가 비료구입비, 노동임금 등의 인상으로 전년대비 9.3%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최근 유류·광열비 오름세까지 감안하면 ‘빚내서 농사짓는다’는 말이 허투루 하는 말로 들리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농협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지난해 수확기 이후 곤두박질한 쌀값으로 지역농협 등의 손실이 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아직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수의 농협이 수매가 확정을 미루며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정부양곡 방출 결정과 관련해서도 농협은 RPC 운영 지속과 거래처 관리 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쌀값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만 농업소득 하락과 농업 생산비 증가 등을 감안해 최대한 높은 수준에서 수매가가 결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문병완 농협 RPC전국협의회장은 “지난해 쌀값 하락의 여파로 아직까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농협이 많지만 농업인의 어려움을 감안해 최대한 높은 수매가가 결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정부 역시 수매 이후 계절진폭이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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