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수년간의 논란 끝에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식물유전체의 특정위치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유전자 편집기술(GE) 또는 동종기원(cisgenesis:대상생물종 또는 교배가 가능한 근연종의 유전자를 생명공학기법을 이용해 도입하는 종자육종)을 이용한 식물과 이를 함유하는 식품과 사료에 대해 기존의 유전자변형생물체법 적용을 대체하면서 시장진입이 훨씬 용이한 새로운 규제법안을 승인했다. 

유전체 신기술(New Genome Techniques, 이하 NGT)로 불리는 이 기술들은 전통적인 교배를 통한 육종 또는 교배를 통해 도입할 수 없는 외래유전물질을 생명공학적으로 도입하는 방법에 비해 더 표적화된 특정 위치에서만 유전적 치환 또는 삭제를 가능하게 해 내병성, 가뭄저항성, 영양분 증대 등과 같은 유익한 특성을 가진 식물 품종을 얻을 수 있게 만든다.

NGT는 외래유전자가 육종산물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 일본, 브라질 등 많은 나라에서는 전통적 육종 기술로 얻은 식물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시장진입에 관련된 규제장벽이 낮거나 없어 다국적 종자기업뿐만 아니라 많은 농생명공학 스타트업들이 새로 뛰어 들고 있다.

몇몇 예를 살펴보자. 일본 쯔쿠바 대학의 학내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사나텍시드(Sanatech Seed)는 2021년 유전자 가위 기술을 통해 뇌 신경전달물질, 혈압 상승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는 가바(GABA;Gamma-aminobutyric Acid)를 생산하는 토마토를 혈압상승 억제, 스트레스 억제, 수면의 질을 높이는 식품으로 시장에 출시했다. 2019년 미국 농업생명공학 기업 칼리스트(Calyxt)는 유전자 편집기술을 통해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인산 함량을 높인 콩을 ‘칼리노(Calyno)’를 개발·출시했다.

칼리노는 혈중 콜레스테롤 함량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진 올레인산 함량을 보통 콩의 23% 수준에서 80% 수준으로 높이고 포화지방산은 20% 이상 줄였다. 칼리스트는 세계 4대 곡물 메이저 중 하나인 ADM과 공급계약을 체결했으며 올해 종자육종전문회사인 씨버스와 합병했다.

전통적인 육종의 목표였던 내병성, 내충성, 제초제 저항성 향상에서 최근에는 물 이용 효율과 질소 이용 효율을 높여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는 종자 육종이 활발한 추세다. 특히 유럽이 주도하는 질산태질소의 환경 내 유입(2030년까지 50% 감축) 저감목표는 온실가스 감축과 지표수 오염 문제와 맞물려 작물이 질소의 이용 효율을 높이는 혁신적 육종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나라를 살펴보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월 ‘제3차 종자산업 육성 종합계획(2023~2027년)’을 통해 ‘농업의 반도체’로 불리는 종자산업에 5년간 1조9410억 원의 예산을 투자해 종자산업을 육성하고 미래 식량 주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종자산업 육성 종합계획은 기술 혁신으로 고부가 종자 수출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와 디지털 육종 등 신육종 기술 상용화와 경쟁력 있는 핵심 종자 개발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NGT 규제 개선을 위한 유전자 변형 생물체법(LMO법) 개정이 선행돼야 하는데 21대 국회가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도 해당 안건은 상임위원회 논의조차 없이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예측 가능한 법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고는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힘들다. 20여 년 전 LMO법의 잣대로 당시 존재하지도 않던 지금의 혁신 기술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기술 혁신으로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불필요한 규제 철폐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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