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으로 대상확대
해수부·수협 늑장대응에 선주들 준비 없이 법 적용 받게 돼
구체적 적시된 어선법상 설비기준 되려 어선 안전 저해할 수 있어
현실 반영한 법령 정비도 필요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 확대가 3개월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수산업은 재해율이 매우 높은 산업으로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에 따른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이며 특히 사망 또는 실종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연근해어업이 더욱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에 앞서 정부와 수산업계의 대응현황을 진단해본다.

#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 27일부터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으로 대상이 전면 확대된다.

2021년 국회 문턱을 넘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은 법 시행 즉시 적용받고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사업장은 법률의 공포 3년 후부터 적용을 받도록 유예한 바 있다. 이에 따라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내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게 된다.

국내 연근해 어선 중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선원이 승선하는 어선은 5000여 척 수준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선원이 근무하는 어선은 39개 분야 4979척으로 평균 승선인원은 업종별로 5.3~12.9명 수준이다. 즉 내년부터 5000여개의 어업경영체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 중대재해발생시 1년 이상 징역·10억 원 이하 벌금 병과 가능

내년 1월 27일부터는 어업분야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매우 강한 처벌을 받게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중대재해는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다. 즉 1명 이상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사업주가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모두 이행한 경우는 법률을 적용받지 않는다.

어업인이 안전·보건조치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징역형과 벌금형은 병과될 수도 있다. 사업주와 경영자 뿐만 아니라 법인에도 양벌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중대산업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50억 원 이하의 벌금이 법인에 부과되며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10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을 확대 적용하게 되면 연간 70~80명 가량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2020~2022년 3년간 어선에서 발생한 사고로 374명이 사망, 연평균 124명에게 어선원 재해보험금이 지급됐다. 이는 내년부터 적어도 연간 70~80명의 어업인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 해수부·수협 늑장 대응 ‘도마위’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시행이 다가오면서 해수부와 수협중앙회의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정의당이 21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발의,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통과 당시 중대재해처벌법 부칙에서는 법률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되 다만 개인사업자나 상시근로자가 50인 미만인 사업장은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대형선망어업을 제외하고는 3년이라는 준비기간이 부여됐던 셈이다.

하지만 해수부와 수협에서는 법률이 통과됐음에도 제때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해수부에서는 어업안전재해저감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긴 했으나 전체적인 대응방안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올해 들어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마저도 해수부가 의뢰한 연구용역이 아닌 KMI의 자체 연구인 기본과제다. 수협중앙회는 지난 2월에서야 ‘연근해어업 중대재해 예방체계 지원 구축사업’ 착수보고회를 갖고 대응에 나섰다. 해수부와 수협 모두 3년이라는 시간 중 2년을 그냥 흘려보낸 셈이다.

KMI의 연구결과와 수협의 중대재해 예방체계 지원 구축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해도 이를 어업현장에 적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 즉 어업인들은 내년 1월 27일부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강원 강릉시의 한 어업인은 “내년부터 어선어업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는다고 하는데 뭘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사고가 나면 강하게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지 않으려면 선주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해수부도, 지자체도, 수협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 통계는 없고 개선사항만 산적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어업재해와 관련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에서 법령정비를 포함한 개선사항만 산적한 실정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수협중앙회의 수산인안전공제와 어선원보험자료를 활용해 어업재해율을 산출한 결과 2015년 기준 어업분야 재해율은 5.56%로 제조업에 비해 10배 가량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마저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산출한 전체 재해율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통계는 없다. 육상근로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중대재해율을 조사해 발표하고 있지만 어업분야는 재해율 통계 조차 없는 상황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법령 정비를 비롯한 개선사항은 산적해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어선법의 위반 문제다. 어선법상 어선설비기준은 안전 등과 관련한 설비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어선설비기준이 오히려 어선의 안전을 저해할 수 있어 어업인들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어선을 개조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어선 기관실의 격벽 문제다. 어선의 기관실은 출입문을 제외하고는 격벽으로 막혀있다. 노후 어선의 경우 기관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가 많기에 소규모 어선의 선장들은 격벽을 뚫어 유리창을 만든 후 조타실에서 기관의 상황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는 재해를 저감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어선법을 위반한 것이기에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례로 볼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뿐만 아니라 어선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어선 개조 행위가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돼 법령의 정비가 필요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어업인에 대한 안전교육 역시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어선의 선장은 연간 일정 횟수 이상의 안전교육을 이수해야하나 교육 대상은 선주 또는 선장을 비롯한 간부선원에 국한된다. 더욱 큰 문제는 교육의 커리큘럼이다. 어업인들은 안전교육이 실질적이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어업인들이 받고 있는 안전교육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보다는 심폐소생술이나 소화기 사용법 등 사후 대책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전북의 한 연안어업인은 “솔직히 말해서 면세유를 받으려고 교육을 받기는 하는데 안전교육이 대체 사고 예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모르겠다”며 “심폐소생술 실습교육을 하면 어선원이 안 다치고 소화기 사용법을 배우면 어선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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