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썩은 환부는 즉각 도려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에 새살이 돋아 치유된다. 하지만 최근 농업계에선 환부가 아닌 멀쩡한 살까지 도려내라는 압박에 떨고 있다. 농업 분야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이야기다.

농촌진흥청의 내년도 예산은 올해 대비 13.5%, R&D 예산은 24.6%가 줄었다. 문제는 애먼 사업에까지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위성곤 의원에 따르면 올해 농진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성과 평가에서 농업실용화기술 R&D 지원’, ‘신농업 기후변화 대응체계 구축사업 부문에 대해 우수등급을 받았다. 그러고도 두 사업의 예산은 지난해 대비 각각 88.7%, 11.2% 삭감됐다.

특히 농업실용화기술 R&D 지원사업 예산은 올해 133억 원에서 내년도 15억 원으로 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아직도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나눠먹기 등 ‘R&D 카르텔을 척결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정부의 입장과도 배치된다.

우수 등급 사업도 이러할진대 다른 사업들은 오죽할까. 그러다보니 내년까지 예정됐던 사업이 제 성과를 내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올해로 종료되는가 하면 예산이 너무 크게 줄어 실질적 사업이 어려워졌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이 경우 이미 지출됐지만 회수가 어려운 매몰비용이 될 가능성이 높다. 농업계에서 발생할 매몰비용이 도대체 얼마나 될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지만 결코 적지 않을 것이란 건 분명해 보인다.

전국공무원노조 농촌진흥청지부도 지난 29일 성명서를 통해 효율성만 내세운 R&D 예산 감축으로 인해 중요한 국가적 과제들을 수행하지 못하고 농업연구 생태계가 점진적으로 붕괴될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우리의 생명이고 미래인 농업의 씨종자까지 먹어치우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거친 표현을 써가며 드러낸 정부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에서 절박함마저 느껴진다.

예산의 방만 집행에 따른 비효율을 수술하려면 어디가 문제인지부터 진단해야 한다. 진단 없는 무작위식 수술은 환부 주변의 불필요한 수술흔만 남길 뿐이다.

문득 매년 노벨상 수상자 0명을 부끄럽게 여기며 기초과학 R&D를 확대해야 한다고 자책하던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본다. 우리의 반성은 늘 반성으로만 그치고 수평 확장되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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